항목 ID | GC075006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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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蘇同-妻 麗興閔氏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전라북도 익산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상범 |
출생 시기/일시 | 1572년 - 소동의 처 여흥민씨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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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592년 - 소동의 처 여흥민씨 사망 |
묘소|단소 | 소행진충신각 -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서고도리 서계마을 |
[정의]
조선 후기 익산 지역의 열녀.
[활동 사항]
여흥민씨(麗興閔氏)[1572~1592]는 1572년(선조 5) 익산에서 태어나 소행진(蘇行震)[?~1592]의 둘째 아들인 소동(蘇同)과 결혼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시아버지 소행진은 같은 고향 사람인 이보(李寶)와 함께 의병 400여 명을 모집하여 이치(梨峙)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전사하였다 소행진의 전사 소식을 들은 소행진의 맏아들 소계(蘇繼)도 발상 3일 후 진산 이치전투에 참가하여 전사하였고, 여흥민씨의 남편 소동 또한 이치로 달려가 싸우다 전사하였다. 여흥민씨는 강화의 친정으로 피난을 가 있던 중 시아버지와 남편의 전사 소식을 듣고 자결하였다.
[상훈과 추모]
후손이 끊어져 여흥민씨의 공적이 잊혔으나 1780년(정조 4) 지역 유림의 호소로 1783년(정조 7) 조정에서 정려(旌閭)를 내렸다. 현재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서고도리 서계마을의 소행진충신각(蘇行震忠臣閣) 내에 여흥민씨의 정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