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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300909
한자 黃嗣永
영어음역 Hwang Sayeong
이칭/별칭 덕소(德紹),황시복(黃時福),알렉시오
분야 종교/기독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종교인
지역 충청북도 제천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인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775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790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790년연표보기
몰년 시기/일시 1801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801년연표보기
성격 종교인|순교자
성별

[정의]

조선 후기 제천에서 백서를 작성하였다가 체포된 뒤 순교한 천주교 신자.

[가계]

본관은 창원(昌原). 이명은 황시복(黃時福), 자는 덕소(德紹), 세례명은 알렉시오.

[활동 사항]

황사영(黃嗣永)[1775~1801]은 1790년(정조 14) 사마시에 입격(入格)하여 진사가 되었다. 정약종에게 교리를 배운 뒤 1790년 천주교에 입교하였다. 이후 전교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섰으며, 1795년(정조 19) 주문모 신부를 만난 뒤 더욱 활동 영역을 확대해 나갔다. 1801년(순조 1)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여주와 원주를 거쳐 제천 배론에 피신하여 조선 교회의 참상과 교회의 재건책을 작성하였다. 이 문건을 북경에 보내려고 하였으나 9월 29일 체포되었다. 그 뒤 서울로 압송된 뒤, 11월 5일 사형되었다.

[사상과 저술]

황사영이 북경 주교에게 보내려던 청원서 「황사영백서(黃嗣永帛書)」가 있다. 백서는 필사본 1장이다. 122행 13,384자에 달하는 편지로, 62.0×38.0㎝ 크기 명주에 작성되었다. 발신자는 황심(黃沁)[토마스]으로 표기되었으나, 실제 작성자는 황사영[(黃嗣永=알렉시오]이다. 「황사영백서」를 전달하기로 예정된 사람은 옥천희(玉千禧)[요한]이며, 수신인은 구베아(Gouvea)[1751~1808] 주교였다.

백서는 황사영이 1801년 8개월간 제천 배론의 토굴에 은신해 있으면서 작성하였다. 내용에는 조선 교회가 처한 어려움을 설명하고, 특히 신유박해 동안 순교자들의 행적을 기술하였다. 이어 교회 재건과 신앙 자유를 위한 방안을 적었다. 원본은 1801년 9월 황사영이 체포되면서 압수되었다가, 1894년 교회에 입수되었다. 그 후 1925년 조선 교구장 뮈텔(Mutel)[민덕효(閔德孝)]이 원본을 교황 비오 11세에게 선물하여, 현재 로마 교황청 민속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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