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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300968
한자 崔旭永
영어음역 Choe Ukyeong
이칭/별칭 송산(松山),청계(淸溪),권태준(權泰俊)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북도 제천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구완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54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907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몰년 시기/일시 1919년연표보기
추모 시기/일시 1977년연표보기
묘소 충청북도 제천시 고암동 지도보기
성격 의병
성별
대표 경력 이강년 의진 군사장

[정의]

개항기 제천 출신의 의병.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송산(松山), 호는 청계(淸溪), 이명은 권태준(權泰俊).

[활동 사항]

최욱영(崔旭永)[1854~1919]은 1907년(순종 1) 여름, 고종이 강제로 퇴위하고 군대가 해산되자 민긍호(閔肯鎬)[?~1908, 개항기 의병장]에 호응하여 신림(神林) 안강리(安康里)에서 의병을 모집한 뒤 여러 곳에서 일본군을 공격하였다. 후에는 이강년(李康秊)의 군사장(軍師長)으로 활약하기도 하였으나, 이강년이 체포된 후 귀향하여 권태준(權泰俊)으로 이름을 바꿔 은신하였다.

1913년 여름, 서울에 사는 김재성(金在性)이 고종에게서 비단에 쓰인 밀서를 받아 오자 국권 회복에 뜻을 두고, 1914년 10월부터 12월 사이에 경상북도 안동군 내남면 유승만(柳承晩), 예안군 이중화(李重和), 산청군 조(趙) 감역, 강릉군 김병연(金秉淵)·이인화(李仁和) 등과 구국 운동을 전개하기 위한 군자금 모집에 나서 138원 72전과 물품 14점을 강취하였다. 하지만 부하 안교봉(安敎奉)·염석룡(廉石龍) 등을 시켜 안동·제천 등지에서 현금과 물품을 강취하였다는 혐의로 체포되었다.

1915년 6월 공주지방법원에서 강도교사죄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뒤, 그해 7월 경성복심법원 2심에서 항고가 기각, 원심이 확정되었다. 마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혹독한 고문의 여독으로 신병을 얻어 1919년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묘소]

묘소는 1984년 제천시 고암동 순국선열 묘역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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