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10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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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肇承 |
영어음역 | Yi Joseung |
이칭/별칭 | 기중(紀中),관의재(寬毅齋)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구완회 |
출생 시기/일시 | 187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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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900년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출생지 |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북노리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호좌의진 대장 종사 |
[정의]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가계]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기중(紀中), 호는 관의재(寬毅齋).
[활동 사항]
이조승(李肇承)[1873~1900]은 제천시 한수면 북노리에 살았다. 일찍이 이인구(李寅龜)·지운상(池運象) 등에게 배웠고, 나중에 유중교(柳重敎)가 장담으로 내려오자 그 문하에 들어가서 배움을 청하였고 유치원(兪致元)에게도 배웠다. 유중교가 세상을 뜬 후에는 유인석(柳麟錫)을 스승으로 섬기면서 장담마을에서 추진하였던 『성재집(省齋集)』을 발간하는 일에 동참하였다.
1895년(고종 32) 말, 단발령이 내리고 장담의 선비들이 처신 방법을 논의할 때 스승과 함께 망명 노선을 선택하였으나 안승우(安承禹) 등 장담의 선비들이 의병을 일으키고 유인석을 대장으로 추대하자 홍선표(洪選杓)·이기진(李起振)·정화용·이정규(李正奎) 등과 함께 대장 종사가 되어 종군하여 작전 계획과 여러 전투에 참여하였다.
호좌의진이 근거지로 삼았던 제천에서 관군에게 패한 후에는 서울로 올라가 의병에 대한 비판적 여론을 돌리기 위하여 애쓰다가 서북 지방을 향해 이동하는 대장진을 뒤따랐다. 유인석이 중국으로 망명하자 홍선표 등과 함께 스승을 좇았으며, 청나라로부터 도움을 받기 위하여 선양[瀋陽]까지 다녀왔는데, 병으로 귀국하여 얼마 후 세상을 떠났다.
[저술 및 작품]
유인석의 뒤를 좇아 중국을 다녀온 기록인 『서행일기(西行日記)』가 전하는데, 호좌의진이 장기렴에게 패한 후 의병들의 동향을 엿보는 데 큰 도움이 되는 책이다.
[상훈과 추모]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