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16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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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음역 | Homissinni |
영어의미역 | Hoe-washing Break |
이칭/별칭 | 호무씻이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오선영 |
[정의]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음력 7월쯤에 김매기를 마치고 일꾼을 위로하는 잔치 풍습.
[개설]
호미씻이는 논농사를 짓는 농민들이 호미로 풀 베는 일을 마무리 하며 음력 7월 중에 날을 잡아 벌이는 동네잔치이다. 이를 ‘호무씻이’라고도 한다. 씨앗을 뿌린 초기에는 곡식과 풀이 함께 자란다. 음력 5월이 되면 본격적으로 풀이 올라오기 시작하는데, 이때 호미로 땅을 갈며 풀을 뿌리째 뽑았다. 이렇게 처음 풀을 매는 것을 “아이 맨다.”고 한다. 아이를 매고 한 달 정도 지나면 또 풀이 올라와 이를 매야 하는데, 이를 “이듬 맨다.”고 한다. 이듬을 매고 7월이 되면 풀이 더 이상 많이 자라지 않기 때문에 농작물을 살피러 다닐 때마다 손으로 뽑아도 된다. 그래서 7월이 되면 마을에서는 날을 잡아 힘들었던 농사일을 잠시 쉬기 위해 호무씻이[호미씻이]를 한다. 농사일에 더 이상 호미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이날을 ‘호무 씻는 날’이라고 하였다.
[연원 및 변천]
조선 후기 유중림(柳重臨)[1705~1771]이 1766년에 집필한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 나타나는 ‘세서회(洗鋤會)’는 일종의 호미씻이로 볼 수 있다. 이어 우하영(禹夏永)[1741~1812]의 『천일록』에는 ‘세서연(洗鋤宴)’으로 기록되었다. 17세기 이래 노동력의 집중도를 증가시킨 이앙법 등으로 농업의 기술과 형태가 발전하면서 모내기·논매기의 작업을 마을 단위 공동 노동으로 하게 되었다. 그래서 일 년 중 논매기 작업을 마친 후에, 공동 노동을 매듭짓는다는 차원에서 농민들이 함께 모여 하루를 쉬는 형태의 호미씻이 풍습이 생겨났다.
제천 지방의 호미씻이에 대한 기록은 무라야마 지준[村山智順]의 『조선의 향토오락』에서 찾을 수 있다. 여기에서는 호미씻이가 제천 지방의 놀이로 소개되고 있으며, 7월에 농민들에 의해 행해진다고 기록되어 있다. 1960년대 말까지만 하여도 제천의 마을에서 호미씻이를 하지 않는 곳이 없었다. 하지만 점차 제초제를 사용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호미 사용하는 일이 줄었고, 호미씻이도 없어지게 되었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호미씻이는 칠월 칠석과 백중을 전후하여 마을 잔치를 베푼 농경 세시 풍속의 하나이다. 농사의 규모가 커서 머슴을 부리는 집에서는 호미씻이 하는 날 술과 국수를 양껏 내어 주고, 머슴들에게 돈을 주어 놀게 하였다.
제천 지역에서는 마을 회의 또는 마을 어른들의 결정으로 음력 7월 중에 날이 정해진다. 이날 마을 사람들은 하루 일을 쉬고 함께 모여 풍물을 치며 즐겁게 논다. 마을에 많은 사람이 모이기 적당한 장소가 없으면 인근에 넓은 지역으로 함께 나들이를 가기도 한다. 밀과 보리를 타작하여 이날 밀국수와 보리국수를 해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