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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1240
한자 新石器時代
영어음역 Sinseokgi Sidae
영어의미역 Neolithic Age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시대 선사/석기
집필자 강창화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지역에서 구석기 시대와 중석기 시대를 이어 나타나는 간석기를 도구로 만들어 사용한 시대.

[개요]

지구 상의 기후가 빙하기에서 현재와 같은 홀로세(Holocene)의 간빙기로 접어드는 시기는 대략 12,000~10,000년 전이다. 이 시기는 과거 구석기 시대의 사람들이 잡아 먹던 대형 동물들이 변화된 자연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절멸되면서 지구 상에 남아 있던 사람들에게 새로운 먹거리를 확보해야만 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그 결과, 개발된 것이 농경과 가축 사육의 시작이다. 이 시기의 석기는 초기에 뗀석기가 소형화하면서 사용되다가 간석기로 대체된다.

한반도에서 신석기 시대의 개시는 시베리아 지역 도처에 거주했던 고아시아족이 중국 동북 지역과 연해주 지역을 거쳐 한반도로 이주하면서 시작되었다. 신석기 시대 주민들은 주로 물과 식량 자원이 풍부한 해안가 언덕·큰 강가에 인접한 대지·인근 도서 지방 등에 자리 잡고 생활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내륙 지역인 금릉 송죽리·청원 쌍천리·합천 봉계리·청도 오진리·거창 임불리에서도 유적이 발견됨으로써 깊은 내륙의 강가에서도 생활하였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유적의 종류는 주거지·무덤·패총 등이 있다.

[초기 신석기 문화의 형성]

제주도의 신석기 시대 연구는 고산리 유적의 발견으로 크게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고산리 신석기 문화는 이와 비교할 수 있는 내용이 아직 한반도 본토에는 없는 실정이다. 이에 시베리아 아무르강 중하류 오시포프카(Osipovka) 문화의 유물 조합상과 일본 열도의 조몬[繩文] 시대 초중기의 유물 조합상을 비교 대상으로 할 수 있다. 그 결과, 고산리식 토기의 유입과 사용 시기는 아무르강 유역의 오시포프카 문화 3단계에 해당하는 11,000-9,000 B.P.로 설정할 수 있다.

[토기 문화의 전개]

제주도 신석기 시대 토기는 고산리식 토기, 융기문 토기, 압인문 토기, 봉계리식 토기, 이중 구연 토기순으로 나타난다. 이 토기들은 제주도의 신석기 시대에 차례로 발생하여 확산되어 나감에 따라 신석기 문화의 전개 양상을 초기, 조기, 전기, 후기, 만기로 구분하여 이해할 수 있다.

신석기 초기는 고산리식 토기 단계이다. 고산리식 토기는 고산리 유적과 김녕리 유적을 중심으로 출토되었다.

신석기 조기는 융기문 토기 단계이다. 이 단계는 고산리식 토기와의 공반 관계가 형성되지 않아 고산리 문화의 종말기와 맞물리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삼양동에서 융기문 토기와 함께 양면 박리의 첨두기와 석편이 출토되고 있어, 융기문 토기의 상한 연대가 소급될 가능성과 고산리식 토기의 하한 연대가 내려올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신석기 전기는 압인문 토기 단계이다. 이 단계는 아직 자료가 충분하지 않아 확실한 시기 설정이 어렵다. 그러나 온평리와 고산리 동굴 출토 압인횡주어골문 토기, 고산리 출토 ‘之’자문 토기 등으로 토기의 계통을 알 수 있다. 전자는 남부 지방의 영선동식(瀛仙洞式) 토기 단계로, 후자는 동북 지방의 연속압날‘之’자문 토기 계통으로 파악된다.

중기의 전형적인 태선침선문 토기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로는 화산섬이 만들어낸 수렵과 채집 및 어로 행위에 적합한 풍부한 생계 조건이 이미 주어진 최상의 환경 조건에서 애써 농경을 택할 이유가 없었던 데 원인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따라서 농경과 연관된 전형적인 태선침선문 토기는 사용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 시기를 공백기라고 단언하는 것은 아니다. 섬이 갖는 문화의 전통성·잔존성·독특성으로 인해, 조기 또는 전기 토기의 지속 또는 후행 가능성과 후기의 봉계리식 토기 단계의 선행 가능성도 전혀 배제하지 못한다.

후기는 봉계리식 토기 단계이다. 이 단계는 성읍리 야외 생활 유적과 북촌리 암음 주거 유적이 대표 유적이다. 성읍리 유적에서 출토되는 다양한 압날 기법의 단순 복합 문양은 전형적인 봉계리식 토기 전통을 갖고 있으며, 남부 지방 후기 토기군과 맥락을 같이 한다.

이러한 온평리 압날문 토기는 압날 점렬문과 퇴화 침선문 토기를 표지로 하는 북촌리식 토기 단계로 발전하게 된다. 북촌리식 토기는 특정 문양의 선호·조흔 수법·거치상의 침선 수법 등의 봉계리식 토기 전통 위에 제주도에서 자체적으로 제작되었다. 특히, 삼각형 문양과 같은 독자적인 문양 형태를 발전시킨 재지적 성향을 강하게 드러낸다.

만기는 이중 구연 토기 단계이다. 이 단계는 북촌리 바위 그늘 맨 아래층[Ⅴ층]을 표지로 한다. Ⅴ층에서 채집한 전복패 시료의 C14 연대가 2,920±25B.P.로 나와 있어 하한 연대를 추정해볼 수도 있다. 이 토기가 출토되는 유적들은 해안 사구층 하단 또는 해안 인근 평탄 지대에 자리하고 있다. 이 시기에 와서 본격적인 패총이 만들어지며 해안을 중심으로 한 인구 확산과 안정된 생계 패턴이 이루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이중 구연 토기와 함께 직립 구연의 심발형 무문양 토기가 일부 공반 출토되고 있다. 이 점은 청동기 시대의 민무늬 토기로 이어지는 자체 토기의 발전 가능성도 제시해볼 수 있게 한다.

[신석기 후기의 환경]

끝으로 신석기 후기 단계 당시의 조간대를 중심으로 한 고환경 연구가 주목된다. 특히, 하모리 송악산 일대 자료는 3,000B.P. 이전의 수렵 어로 집단이 처했던 당시 환경을 추측할 수 있게 한다. 응회환과 화산재 속에 뒤덮인 과거 갯벌 조간대의 수렵인들의 발자국, 사슴과 노루 등을 중심으로 하는 동물상, 갈대류·밤나무·잎화석이 보여 주는 식물상, 해안 모래 사구층의 형성 등은 살아 있는 고환경 복원 자료가 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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