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005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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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平康蔡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신월리|진천군 덕산읍 용몽리 |
집필자 | 강민식 |
세거지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면 용몽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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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성촌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면 용몽리 |
입향시기/연도 | 조선 전기 |
성씨시조 | 채송년 |
입향시조 | 채진정 |
[정의]
채송년을 시조로 하고 채진형(蔡震亨)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 성씨.
[연원]
평강채씨(平康蔡氏)의 시조 채송년(蔡松年)은 고려 고종 때 병마사(兵馬使)로서 청새진 호장(淸塞鎭戶長) 등의 모반을 사전에 탐지, 그들을 달래고 주동자를 처벌했다. 북계병마사(北界兵馬使)가 되었고, 참지정사(參知政事)를 거쳐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에 이르렀다.
조선시대에 평강채씨는 문과 급제자 41명, 상신(相臣) 1명, 대제학 1명, 호당(湖堂) 3명, 장신(將臣) 1명을 배출했는데 대표적인 인물로는 채제공(蔡濟恭)을 들 수 있다. 채제공은 영조 때 문과에 급제하여, 정조 초에 이르기까지 도승지(都承旨)와 육조의 판서를 두루 역임했다. 그는 본래 남인(南人) 출신으로 이른바 갑술옥사(甲戌獄事) 이후 정권에서 완전히 배제되었으나, 정조의 두터운 신임과 탕평책(蕩平策)으로 우의정에 발탁된 이후 영의정에 이르기까지 10여 년 동안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많은 치적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입향경위]
평강채씨는 고려 말기의 두문동 72현의 한 명인 채옥택(蔡玉澤)의 8세손 채진형(蔡震亨)이 진천군 덕산면 용몽리 안꿈마을로 내주(來住)한 이래 400여 년간 세거하고 있다.
[현황]
2000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진천군 관내에 거주하는 평강채씨는 73가구 193명으로 나타났다. 진천군 덕산면 용몽리 안꿈마을 총 가구수 30여 호, 인구 140여 명 가운데 채씨가 대성을 이루고 있다. 진천군 덕산면 용몽리 묘봉(妙峰)마을에는 50여 가구에 평강채씨·달성서씨·김해김씨가 각 성을 이루고 살고 있다.
[관련유적]
진천군 덕산면 용몽리 몽촌마을 입구에는 효자 채경언(蔡慶彦)의 효자각이 있다. 채경언은 인조 때 사람으로 어머니 병환에 네 번이나 단지(斷指)를 하여 효험을 보았고, 엄동설한에 잉어를 구하여 봉양하였다고 한다. 나라에 효행이 알려져 1743년(영조 19) 효자 정문(旌門)이 내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