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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내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700612
한자 金鼐鉉
영어음역 Kim, nae hyun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낙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성별
생년 1601년연표보기
몰년 미상
본관 경주
대표관직 한성부좌윤

[정의]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경주(慶州). 상촌 김자수(金自粹)의 8세손이고, 전라·충청·경상·해서 관찰사를 지낸 공평공(恭平公) 김영유(金永濡)의 6세손이다. 고조는 김홍필(金洪弼)이고, 증조는 숭의전참봉을 지낸 김자(金磁)이다. 할아버지는 경상도병마절제사를 지낸 김연경(金延慶)이고, 아버지는 장예원판결사(掌隸院判決事)였던 김립(金岦)이다.

[활동사항]

김내현(金鼐鉉)광해군 대에 정계가 소북과 대북으로 나뉘어 반목을 거듭하면서 당쟁이 격화되자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있다가, 광해군이 쫓겨나고 인조가 반정으로 즉위하자 문음으로 벼슬길에 나아가서 한성부좌윤겸오위도총부부총관에까지 이르렀다. 병자호란 때 삼전도에서 인조가 청 태종에 굴욕적인 항복을 하자, 1638년(인조 16) 38세의 나이로 벼슬을 버리고 고향인 진천의 월호촌(月湖村)으로 낙향하였다. 마을 뒷산에 망북정이라는 정자를 지어 놓고 매일 북쪽을 향하여 사배(四拝)를 하며 임금을 그리워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인근의 청년 자제들을 불러 모아 성리학을 가르치는 등 후진 양성에 노력을 기울였다.

[묘소]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평산리에 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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