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005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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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慶州金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원덕리|문백면 장월리|문백면 문덕리|백곡면 대문리|구수리|덕산면 가좌리|합목리|매산리|상고리|진천읍 송두리|이월면 동성리 |
집필자 | 강민식 |
세거지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장월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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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성촌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장월리 |
입향시기/연도 | 조선 전기 |
성씨시조 | 김알지 |
입향시조 | 김자 |
[정의]
김알지를 시조로 하고, 김자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 성씨.
[개설]
경주김씨(慶州金氏)는 김영유(金永孺)의 손자인 김자(金磁)가 진천군 문백면 장월리 월호마을에 입향한 이래 400여 년 동안 세거하고 있다.
[연원]
경주김씨는 대보공 김알지(金閼智)[65~?]의 후예를 총망라한 신라김씨의 대종으로 그 파계가 매우 복잡하여 전모를 파악하기는 어려우나 은열공파(殷說公派)·영분공파(永芬公派)·대안군파(大安君派)·대장군파(大將軍派)·태사공파(太師公派)·판도판서공파(版圖判書公派) 등 6개 파로 대별할 수 있다.
경주김씨는 신라조에서는 왕족으로 영화를 누렸으며, 고려시대에는 『삼국사기(三國史記)』를 저술한 김부식(金富軾)[1075~1151]과 당대의 문장가인 문의공(文懿公) 김부의(金富儀)[1079~1136], 『삼국유사(三國遺事)』를 지은 일연(一然)[1206~1289] 등이 유명하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왕비 3명, 상신(相臣) 6명, 호당(湖堂) 3명, 청백리 5명, 공신 5명, 장신(將臣) 5명, 문과 급제자 202명을 배출하였다.
[입향경위]
경주김씨는 김영유의 증손인 김자수가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에서 진천군 문백면 장월리 월호마을에 내주하여 세거하기 시작하였다.
[현황]
김상(金尙)[1582~1653]은 진천군 덕산면 신척리에서 태어났다. 김장생(金長生)[1548~1631]의 문인으로 1610년(광해군 2) 문과에 합격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1643년에는 충청감사에 부임하였다. 『상산지』 인물조에 김내현(金鼐鉉)이, 김창문(金昌文)·김두석(金斗錫)·김의조(金義祚)·김용발(金龍發) 등은 효자로 이름났다. 2000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진천에 거주하고 있는 경주김씨는 1,205가구 3,683명으로 나타났다.
[관련유적]
진천군 문백면 장월리에 망북정(望北亭)과 김자(金磁) 유허비(遺墟碑)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