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006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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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勉誠 |
영어음역 | Choe Myeonssong |
이칭/별칭 | 송시재(誦詩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전호수 |
[정의]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이자 효자.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조선왕조 개국원종공신 평도공(平度公) 최유경(崔有慶)의 9세손이며, 효자 최사립(崔斯立)의 증손이다. 최사립 이후 최면성에 이르기까지 자손이 모두 효행으로 이름을 얻었다.
[활동사항]
최면성(崔勉誠)은 사마시(司馬試)의 양과, 즉 생원시·진사시에 모두 합격하였으나 광해군 대의 혼란기를 맞이하여 벼슬을 구하지 않았다. 인조반정 후에 경향 각지의 인사들이 추천하여 4개 군의 지군사(知郡事)를 지냈는데, 4개 군에서 모두 유애비(遺愛碑)를 세워 업적을 기렸다. 『상산지(常山誌)』와 『진천군지』에 관련 기록이 실려 전하고 있다.
[상훈과 추모]
부모상을 당하여 3년간 시묘하면서 죽만 먹어 주변 인사들이 그의 효성에 감동하여 여러 차례 정려문을 내려 포상해 주기를 추천하였다. 최사립 이후 3대에 걸쳐 효행이 뛰어나 정려가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