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006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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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任翼常 |
영어음역 | Im Iksang |
이칭/별칭 | 치은(稚殷),현계(玄溪),청서(靑墅)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전호수 |
[정의]
충청북도 진천으로 낙향한 후 도학을 연마한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유학자.
[가계]
본관은 풍천(豊川)이며, 자는 치은(稚殷), 호는 현계(玄溪) 또는 청서(靑墅)이다. 녹문 임성주(任聖周)의 문인인 영서(穎西) 임로(任魯)의 아들이다.
[활동사항]
1789년[정조 13]에 태어났으며, 1835년[헌종 원년] 음사(蔭仕)로 가감역(假監役)을 시작으로 벼슬에 나가 전라도 창평(昌平)현령·금천(金川)군수·인천(仁川)부사·안주(安州)목사·김해(金海)부사 등을 지냈다. 1839년[헌종 5] 창평현령으로 부임해서는 전임 수령 장조(張照)가 시작한 객관 중건을 완성하고 ‘용주관(龍洲館)’이라 편액하였으며, 1852년[철종 3] 이후 김해부사로 재임하면서는 향리들의 환곡부정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사임하고 진천(鎭川)으로 낙향하였으나 탄핵을 받아 장형(杖刑)에 처해지기도 하였다.
1864년[고종 원년] 유일(遺逸)로 피선(被選)되어 전라도도사·사헌부지평·사헌부집의·부사직(副司直)·사헌부헌납에 제수되었으나, 고사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만년에는 충청도 청산(靑山)으로 퇴거하여 도학(道學)을 연마하며 여생을 보냈으므로, 주위에서 청서선생(靑墅先生)이라고 부르면서 존경하였다.
그는 진천으로 낙향한 뒤 특별한 벼슬 활동을 하지 않고 평생을 도학연마와 유학연구에 힘썼으며 이는 『진천군지』와 『상산지』에서 기록하고 있다.
[저술 및 작품]
명칭이 정확히 전해내려 오진 않지만 남아 있는 유집(遺集)이 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