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007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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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升淵 |
영어음역 | Lee Seungyeon |
이칭/별칭 | 뇌연(雷淵),문계(文階),태초(太初),연재(衍齋)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연정 |
[정의]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이자 문신.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초명은 뇌연(雷淵), 자는 문계(文階)·태초(太初), 호는 연재(衍齋). 세종의 별자(別子)인 광평대군(廣平大君)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군위현감 이의화(李義和)이며, 어머니는 통덕랑 유언(兪彦)의 손녀이다.
[활동사항]
이승연(李升淵)[1767~1829]은 유서 깊은 가정에서 시(詩)와 예(禮)의 교육을 받아 선행을 닦고 배우기를 좋아하였다. 홍의영(洪儀泳)과 박윤원(朴胤源)에게서 수학하고, 1792년(정조 16) 사마시에 합격한 뒤 1804년(순조 4) 익릉참봉에 제수되었으나 어머니의 상중이라 부임하지 않았다. 어버이에게는 기쁜 마음으로 효도하고 순종하여 뜻을 받들어 봉양하기에 힘써 집안이 몹시 가난했으나 힘써 맛있는 음식을 갖추어 모자란다고 말하는 바가 없었다.
아버지가 여든이 되고 자신이 예순이 되었지만 항상 노래자(老萊子)[중국 춘추시대 초나라의 학자. 70세에 어린 아이 옷을 입고 어린애 장난을 하여 늙은 부모를 위안하였다고 한다]와 같은 효도를 했다. 상을 당해서는 예를 지키는 데 정도에 지나치게 하여 채소만 먹고 피눈물을 흘리면서 3년을 하루처럼 지냈다. 또한 상복을 벗는 일이 없었으며 비록 병이 들어도 몸소 아침저녁으로 상식(上食)을 올리며 제사를 지냈다. 묘소까지 십 리가 되었으나 닷새에 한 번씩 성묘하면서 비바람을 피하지 않았다. 여러 아우들과 우애가 있어 한집에 모여 살면서 화기가 융합하였다.
[상훈과 추모]
마을 사람들이 모두 감탄하여 지방에 추천하여 성균관박사(成均館博士)에 추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