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005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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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全州李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갈월리|초평면 용기리|이월면 내촌리|진천읍 지암리|덕산읍 기전리|이월면 사곡리|진천읍 장관리|진 |
집필자 | 강민식 |
세거지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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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성촌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기리|덕산면 기전리|백곡면 구수리 |
입향시기/연도 | 조선 전기 |
성씨시조 | 이한 |
입향시조 | 이인 |
[정의]
이한을 시조로 하고, 이인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성씨.
[연원]
전주이씨(全州李氏)는 신라 사공(司空) 이한(李翰)을 시조로 한다.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조선을 건국하면서 그 후손들이 전국적으로 세거(世居)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충청북도 진천군에는 전주이씨 10여 개 파가 세거하고 있는데, 정종의 7남 수도군(守道君)과 10남 덕천군(德泉君), 15남 무림군(茂林君), 세종의 5남 광평대군(廣平大君)과 6남 금성대군(錦城大君), 12남 밀성군(密城君) 등이다. 주로 초기 왕인 정종과 세종의 왕자 후손이 세거하고 있으나 유력 성씨로 자리하지는 못하였다.
[입향경위]
금성대군 이유(李瑜)가 단종 복위와 관련하여 피화를 입자 부부인(府夫人) 전주최씨가 고향으로 낙향하였다. 그 후 증손 덕천군 이인(李仁)이 초평면 용기리 수의동으로 이주하면서 세거하기 시작하였다.
[현황]
양녕대군의 후손 중에는 이필용(李必容)이, 광평대군의 13세손 중에는 이호중(李昊中)과 이승연(李升淵)이 효자로 이름났다. 현재는 덕산면 기전리 선옥마을에 30여 가구가 대성을 이루고 있고, 백곡면 구수리 개죽마을에 40여 가구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유적]
진천군 초평면 용기리 수의마을에 진천 금성대군 사당이 있다. 이 사당은 세종의 6남 금성대군을 기리기 위해 1740년(영조 16)에 건립되었다. 금성대군은 사육신의 단종 복위운동에 연루되어 순흥에 유배되었으며, 그곳에서 순흥부사 이보흠(李甫欽)과 함께 단종 복위를 위한 격문을 돌리다가 고변으로 1457년(세조 3) 사사(賜死)되었다. 1738년(영조 14)에 신원되었고 시호는 정민(貞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