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007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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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士興 |
영어음역 | Choe Saheung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정연정 |
성격 | 효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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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
성별 | 남 |
본관 | 전주 |
대표관직 | 대흥현감무 |
[정의]
조선 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평도공(平度公) 최유경(崔有慶)[1343~1413]의 여섯째 아들이다. 최유경은 1406년(태종 6) 참찬의정부사가 된 뒤 사임하고 진천군 초평면 죽정마을로 내려와 스스로 죽정(竹亭)이라 부르며 한가로이 여생을 보냈다.
[활동사항]
최사흥(崔士興)은 효성이 지극하여, 충청도 대흥현감무로 있을 때 부친상을 당하자 벼슬을 버리고 즉시 고향으로 돌아와 3년 동안 시묘를 살면서 어머니를 지성으로 봉양하였다. 어머니가 병으로 누워 있을 때 허벅지의 살을 베어 죽을 끓여 먹여 효험을 보았고, 모친상을 당하자 3년 동안 시묘를 살았다.
[상훈과 추모]
세종 때 왕명으로 최유경·최사흥 부자를 기리는 최유경 부자 효자문이 세워졌다. 효자문 현판에는 ‘조선효자참찬의정부사평도공최유경지려(朝鮮孝子參贊議政府事平度公崔有慶之閭)’, ‘효자승의랑행대흥현감최사흥지문(孝子承義郞行大興縣監崔士興之門)’이라고 적혀 있다.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에도 최사흥의 효행이 실렸다고 한다. 현재 효자문은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외구마을에 있으며, 지금도 후손들이 외구마을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