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701097
한자 崔有慶父子孝子門
분야 종교/유교
유형 유적/건물
지역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산 11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박종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정려각
양식 맞배지붕 목조 기와집
건립시기/일시 조선 전기|1973년 중건연표보기
정면칸수 1칸
측면칸수 1칸
소재지 주소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산 11 지도보기
소유자 구산동 전주최씨 문중

[정의]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에 있는 조선 전기 효자 최유경·최사흥 부자의 정려각.

[개설]

전주 출신인 최유경(崔有慶)[1343~1413]은 공민왕 대에 사헌장령(司憲掌令), 우왕 대에 전법총랑(典法摠郞)·양광도안렴사(楊廣道按廉使) 등을 거쳐 조선 왕조가 개창된 후에는 원종공신(原從功臣), 경기·충청도의 도체찰사를 거쳐 참찬의정부사(參贊議政府事)·판한성부사(判漢城府使) 등을 지낸 문신이다. 최유경은 퇴관 직후 현재의 진천군 초평면 죽정대(竹亭臺)에서 한가로이 지내다가 7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최유경은 평소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다. 부친상을 당한 뒤 6년 동안 묘막생활을 하였지만 부친을 잃은 슬픔을 그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또한 그의 아들 최사흥(崔士興)도 효성이 지극하여 모친이 병석에 눕자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봉양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부자의 효행이 조정에 알려져 세종 대에 효자 정문이 내려졌다.

[위치]

최유경 부자 효자문(崔有慶 父子 孝子門)진천군청에서 농다리길을 따라 농다리 방향으로 약 5㎞를 가면 문상초등학교를 거쳐 도달하게 되는데, 진천군 문백면 사양리에서 구곡리로 넘어가는 도로변 왼쪽 은진송씨 열녀문(恩津宋氏烈女門) 맞은편에 자리하고 있다.

[형태]

최유경 부자 효자문(崔有慶 父子 孝子門)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목조기와집으로, 정면에는 일각대문이 서 있고, 기와집 주변으로는 시멘트 담장을 둘렀다. 또한 효자문 밖 왼편에는 높이 186㎝, 너비 69.5㎝, 두께 38.5㎝인 최사흥(崔士興)의 효자비가 세워져 있다.

최유경 부자 효자문(崔有慶 父子 孝子門) 내부 현판에는 ‘조선효자참찬의정부사평도공최유경지려 효자승의랑행대흥현감최사흥지문(朝鮮孝子參贊義政府事平度公崔有慶之閭孝子承義郞行大興縣監崔士興之門)’이라고 써 있다. 효자문 왼편의 효자비에는 ‘통훈대부행대흥감무최공사흥지비(通訓大夫行大興監務崔公士興之碑)’라는 비문이 새겨져 있다. 비석은 1973년 10월에 세워졌는데, 최성규가 글을 썼다.

[현황]

최유경 부자 효자문(崔有慶 父子 孝子門)구산동 최씨 문중에서 관리해 왔으나 최씨 문중이 다른 지역으로 많이 이주하여 현재 관리가 미흡한 편이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