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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500087
한자 古墳
영어음역 gobun
영어의미역 ancient tomb
이칭/별칭 말무덤,조산,장고분,똥뫼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남도 진도군
집필자 이영문

[정의]

선사시대에서 역사시대에 이르기까지 특정 시기에 유행한 무덤양식의 총칭.

[개설]

넓은 의미에서 고분이란 과거 사회에서 죽은 이를 위해 수행한 매장의례 행위가 물질적인 증거로 남은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시대나 지역에 따라 고분의 형태가 다르게 나타난다.

고분의 명칭은 몰무덤(말무덤), 똥뫼, 조산(造山), 장고분 등으로 불리고, 고분의 피장자의 신분이나 규모에 따라 묘(墓), 분(墳), 총(塚), 능(陵)이 쓰이고 있다.

묘는 일반적인 묘와 선사시대의 분묘에, 분은 봉토가 있는 삼국시대 분묘에 주로 붙여 쓰이며, 총과 능은 당시 최고 지배자의 분묘로 추정되는 분묘인데, 능은 피장자가 누구인지 확실히 밝혀진 경우에 붙인다.

선사시대 분묘군은 평야지대나 낮은 구릉, 혹은 대지에 분포하고, 대규모 군집상을 보이는 경우는 일부 지석묘 외에는 거의 없다. 고분군의 군집이 대규모화되기 시작하는 것은 원삼국시대에 들어오면서부터이다.

삼국시대 이후 고분군의 입지선정과 배치상태는 삼국 각 지역마다 다르고, 동일한 지역에서도 고분군 조영집단의 사회적 신분에 따라서 다양한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고구려 지역 돌무지무덤의 경우 이른 시기에는 강가에 분포하다가 서서히 낮은 구릉지로 입지를 옮겨 고분군이 형성된다. 백제의 경우 공주로 도읍을 옮기면서 왕릉만이 따로 모여 무리를 이루는 특별한 고분군이 존재하는데, 역시 낮은 구릉지에 입지하는 것이 보통이다.

신라·가야 지역의 경우 고분군이 대규모로 집단화되기 시작하는 초기 단계에는 평지에 분포해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구릉사면으로 고분군의 입지가 옮겨진다.

[현황]

진도 지역에서 조사된 고분으로는 청동기시대 지석묘와 역사시대의 고분, 석총이 있다. 진도 지역의 고분은 그 존재는 확인되고 있지만 고분에 대한 정밀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축조된 시기와 내부구조 등의 성격은 알 수 없다.

진도군에 분포된 지석묘는 1999년에 조사했을 당시 총 78개 군 570기(581기)가 확인되었는데, 이 지석묘는 군내면·고군면 일대, 진도읍·의신면 일대, 임회면·지산면 일대 등 3개 권역에 밀집하여 분포하고 있다.

지석묘들은 주로 해안에서 가까운 평지나 구릉의 경사면에 자리 잡고 있어 당시의 생활 근거지를 엿볼 수 있다. 이곳에서 확인된 유물로는 무문토기편을 비롯하여 석촉, 석부, 연석등 주로 농경과 관련된 것들이다.

진도에서 알려진 고분은 고군면 오산리 2기, 의신면 침계리 2기, 지산면 관마리 5기의 봉토분과 고려 고분인 하조도 신육리 석실, 석총으로 보고된 군내면 분토리 2기, 군내면 상가리 3기, 고군면 오산리 수십 기가 있다.

이 고분들 중에서 오산리침계리, 관마리 고분은 주민들이 말무덤이라 부르고 있으나, 대부분 규모가 길이 5m 이내의 소형들이며, 그중 침계리 1기만 길이 7m, 높이 2.5m로 큰 편이다. 그러나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내부 구조나 유물, 시대 등의 성격을 파악할 수 없다.

다만 신육리 고분은 청자상감국화문팔각접시 등, 상감청자류와 청동발편이 출토되어 고려 고분임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진도에서 발견된 석총은 후대에 많이 훼손되거나 인멸되었다.

[의의와 평가]

고분은 당시 사람들이 축조한 무덤으로 사회상이나 문화상을 파악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또한 당시의 정치적인 중심지를 추론할 수 있고, 당대의 사회구조, 사후세계에 대한 인식 등 선사와 고대의 사회 성격을 규명할 수 있는 고고학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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