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5004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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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洞契 |
영어음역 | donggye |
영어의미역 | village mutual aid association |
이칭/별칭 | 대동계(大洞契),이중계(里中契),동중계(洞中契),동리계(洞里契),촌계(村契) |
분야 |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남도 진도군 |
집필자 | 김정호 |
[정의]
마을 또는 동·리의 복리증진과 상호부조를 위하여 공유재산을 마련하고 관리하는 자치 조직.
[개설]
대동계(大洞契)·이중계(里中契)·동중계(洞中契)·동리계(洞里契)·촌계(村契)라고도 한다. 계란 특정 목적을 위하여 여러 사람이 모여 공동으로 기금을 염출하고, 그 기금으로 식리(殖利)하여 목적을 달성하려는 결사체이다.
[변천]
계의 발생은 신라시대까지 소급하나 동계의 발생 연대는 명확하지 않다. 사유관념이 형성되고 촌락이라는 정착생활이 시작되면서 촌락 단위의 행사가 거행되고, 그 경비를 공동부담할 필요성을 느끼면서 지금의 동계와 비슷한 형태의 조직이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성리학에 입각한 지방자치 규약이라 할 수 있는 향약(鄕約)제도가 후기에 이르러 동계로 정착하였다. 동계(洞契) 또는 대동계(大洞契)란 이름으로 유행하였으며, 인보상조, 동업협조, 과실상규, 예속상교 등 지역사회 공동체의 규범을 보여 주었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오가작통(五家作統)의 연대 부담을 위해 군포계(軍布契)를 조직하기도 하고 공물 납부를 위해 공물계(貢物契)를 조직하던 전통이 있었다. 그 전통이 후일 공동 재원을 근간으로 동네의 흥업(興業)을 위한 사업이나 교육 재원으로 활용하기도 하고, 동제(洞祭) 비용 염출 수단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에는 농사 개량 등 지역사회 자치 능력 배양을 위해 법률로 동계를 권장하였으며, 이후 점차 공공성을 띤 봉사와 부조, 저축의 기능을 담당하는 동계가 유행하였다.
[현황]
진도에도 중종대에 시작된 여씨향약제도를 본받은 동계가 시작되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오늘날 그 흔적이나 동계안이 남아 있는 곳은 진도군 군내면 용장리와 송산리 등지이다.
산성촌(散姓村)과 달리 집성촌(集姓村)에서는 포계 대신 문중 중심의 문계(門契)가 발전하였다. 시대 발전에 따라 동계의 변형인 학계(學契), 상두계, 혼상계 등이 발생했으나, 도서 지방답게 동제(洞祭)를 운영하기 위한 동계는 광복 후까지도 계속된 곳이 많다.
진도에서는 동계 재원 모금을 위해 정초 지신밟기 농악이나 뫼귀굿이 정례화되기도 하였다. 동네 초상 때면 상여 노잣돈을 모아 동계 재원으로 쓰기도 했다. 특히 섬이나 바다 연안 동네에서는 동계가 어촌계로 변하기도 하고, 동중 재산으로 산이나 논밭이 남아 있는 곳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