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5005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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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震琮 |
영어음역 | Park Jinjong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전라남도 진도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정호 |
성격 | 효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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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 박유징(朴宥徵) |
어머니 | 현풍곽씨 |
아내 | 창령조씨 |
출신지 |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가단리 |
성별 | 남 |
생년 | 1758년 |
몰년 | 1834년 |
본관 | 밀양박씨 |
자 | 후옥(厚玉) |
호 | 구절제(九節齊) |
[정의]
조선 후기의 효자.
[가계]
본관은 밀양. 자는 후옥(厚玉), 호는 구절재(九節齋). 박용(朴容)의 둘째 아들 박정(朴挺)의 11세손이다. 아버지 박유징(朴宥徵), 어머니 현풍곽씨 사이의 3남 2녀 중 막내로 1818년 10월 10일 진도군 의신면 가단리에서 태어났다. 창녕조씨와의 사이에 두 아들을 두었다.『호남삼강록(湖南三綱錄)』에는 박진종(朴震宗)으로 기록되어 있다.
[활동사항]
박진종은 1800년부터 1806년까지 진도군 금갑도에 유배와 있던 김이익(金履翼)으로부터 학문을 배웠고, 『순칭록』이라는 책을 토대로 관혼상제에 관한 예의범절을 진도에 널리 보급하였다. 선조 청재공 박심문(朴審問)[1408~1456]의 현창사업에 앞장서서 1804년 3월 진도군 의신면 침계리에 사효재(思孝齋)를 지었다.
또한 효행이 깊어 10세에 병든 아버지에게 똥을 먹여 소생시키려 하였고,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에는 시묘살이를 하였다 한다. 이러한 효행을 중앙정부로부터 인정받아 복호(復戶: 토지나 가호에 대한 세금을 면제받는 것)를 받았다.
박진종의 손자 박득유(朴得遊)도 13세에 병든 어머니를 위하여 자신의 손가락을 이로 물어뜯어 그 피를 입에 넣어드려 수일간 회생시키는 등 선대의 효행을 이어받았다. 박득유에 대해서는 『중증진도읍지(重增珍島邑誌) 』에도 기록되어 있다.
[묘소]
1834년 7월 13일 졸 후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돈지리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