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5006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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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鳳岩書院 |
영어음역 | Bongam Confucian School |
이칭/별칭 | 팔현사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안치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옥희 |
[정의]
전라남도 진도군에 유배되었던 노수신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던 서원.
[개설]
진도에 귀양살이를 하던 유학자들이 진도 군민들을 가르쳐 문풍을 일으켰으므로, 이들을 기리기 위해 서원을 세워 모시는 전통이 생겼다.
봉암서원에 대한 첫 기록은『영조실록』에 나오며 1759년 간행한『여지도서』 진도 「단묘(壇廟)」 항목에도 나온다. 1791년『진도군읍지』에 따르면 원생이 60명이었다고 한다. 이 서원은 1864년 고종 서원 철폐 때 헐린 것으로 보이나 기록에 따라 훼철시기를 1903년이라고도 한다.
[건립경위]
을사사화로 인해 1546년에서 1565년까지 19년 동안 진도에서 유배 생활을 했던 노수신의 학공을 기리기 위해 1602년에 세워졌다.
[위치]
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안치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변천]
1684년 진도읍 북상리에 경현사를 설립해 노수신, 정홍익, 이경여를 함께 모셨다. 이를 봉암사라 했다. 그 뒤 진도읍에 위치한 읍성 동북쪽 2리 지점으로 옮기면서 김수항, 이민적, 신명규, 남이성을 추배했다.
1725년 조태채를 추가 배향하여 모신 사람이 8명이라 하여 팔현사라고도 불렀다. 이 중에서 이민적은 이경여의 아들로 진도에 유배된 일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뒤에 이태중, 조득영이 추가로 배향되어 10명을 모신 기록이 있다. 1864년 고종이 내린 서원 철폐령에 의해 철폐되었다.
[의의와 평가]
봉암서원은 진도에 있었던 유일한 서원으로, 진도 지역의 유교적 맥락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