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5010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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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中里-洞祭-蟲祭 |
영어음역 | Jungni Maeul Dongjewa Chungje |
영어의미역 | sacrificial rite of Jungni Village for village tutelary and expelling harmful insects |
이칭/별칭 | 중리마을 거르제,중리마을 충제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제 |
지역 |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옥대리 중리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진 |
[정의]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옥대리 중리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올리는 제사.
[개설]
중리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1월 14일 밤 12시에 거르제를 모신다. 거르제는 중리마을에서 객사한 사람이나 돌아가신 마을주민들의 영혼을 기리기 위해 지내는 것으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충제는 매년 6월 초하루 밤 10시에 지내는데, 농약이 발달하기 이전에 한해의 풍년을 기원하고 병충해를 예방하기 위한 염원을 담아 지내는 의식이었다.
중리마을의 거르제와 충제는 원래 인근에 있는 두 개의 마을과 함께 지내는 의례였으나, 근래 들어 두 마을이 제사에 참여하지 않아서 중리마을이 단독으로 모시고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거르제는 마을회관 뒤에 마련한 제터에서 지냈으나 7년 전 홍수에 제터가 떠내려 간 이후 그곳에 당집을 마련하여 제를 지내고 있다.
신체는 특별히 없으며, 중리마을에서 객사한 사람이나 돌아가신 마을주민들의 영혼을 기리기 위해 지내는 것으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충제는 마을 뒷산에 마련한 상석에서 지낸다. 상석 앞에는 본래 소나무 한 그루가 있었으나 10년 전 솔충으로 소나무가 죽자 그 자리에 마을 부역으로 상석을 마련한 것이다. 그러나 제는 소나무에 지내는 것이 아니므로 소나무는 따로 심지 않았다.
[제관의 선정 및 역할]
거르제와 충제를 진행하는 사람들을 이 마을에서는 제관이라고 부른다. 거르제 제관은 제일에서 3일 전쯤에 선정하는데 마을이장이 마을의 연장자나 유지에게 부탁을 하는 것으로 선정한다. 거르제를 진행하는 사람은 총 세 명으로, 이중 제관이 한 명이고 나머지 두 명은 제를 돕는 심부름꾼이다.
또 제관과 심부름꾼 이외에 음식을 장만할 사람을 따로 선출하는데, 이 사람은 월경을 하지 않고 부부생활을 하지 않는 나이든 여자로 한 명 선정해서 음식을 장만하게 한다.
충제 제관은 5월 30일경에 선출하는데, 충제 제관 또한 이장의 부탁으로 선출된다. 제관은 과거에는 세 명이었으나 근래 들어 두 명으로 줄여 뽑는다.
[절차]
동제를 지내기에 앞서 제관은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다음 심부름꾼들과 함께 제물을 들고 마을회관 뒤에 위치한 당집으로 이동한다. 당집에 도착하면 제관은 진설을 하고 절을 올린다. 그러고 나서 술을 한 잔씩 올리고 다시 절을 하고 난 후 축문을 왼다.
이 축문은 마을의 연장자가 거르제를 지내기 이전에 따로 베껴서 마련해 준다. 축문을 외고 나면 심부름꾼들은 당집 근처의 들로 나가서 헌식을 위해 준비한 곳곳에 보리밥을 골고루 뿌린다.
그러고 나면 제관은 소지를 올리고 구축을 왼 후 음복을 하고 제를 마친다. 이렇게 제가 끝나면 심부름꾼들은 한지를 꽂은 대나무들을 헌식을 한 들에 일정한 간격으로 꽂아두어 당분간 외부인들의 출입을 막는다.
충제는 비교적 간소한 순서로 진행이 된다. 오후 5시 정도가 되면 제관들은 회관에서 장만한 제물을 들고 마을 뒷산 제터로 올라간다. 그리고 가장 먼저 제물에 달려드는 개미떼들을 막기 위해 마른 멸치를 곳곳에 뿌린다. 이것을 ‘개미밥 준다’고 한다.
이렇게 개미밥을 주고 난 후 진설을 시작한다. 진설을 마치면 술을 한 잔 붓고 절을 올린 후 곳곳에 제물을 모두 뿌려 헌식한다. 충제에 가지고 올라간 제물은 가지고 내려오지 않는다.
[제물/용품/제구]
과거 제물은 제일에서 가까운 장날에 구입했지만 현재는 매일시장이나 마트를 통해 제일 당일 제물을 구입한다. 제물은 제사에 필요한 양만 준비하며, 이튿날 뒤풀이에 사용할 음식들은 다음날 따로 구입한다.
거르제의 제물은 사과, 배 따위의 과일과 밥, 포, 술잔을 모두 7개씩 준비한다. 그리고 돼지머리를 놓고, 대추와 밤을 한 홉씩 놓는다. 떡은 따로 준비하지 않으며 헌식을 할 때 사용할 보리밥을 별도로 준비한다. 제주로는 소주를 사용한다.
충제의 제물은 밥과 국, 삶은 닭과 과일로 비교적 간단하게 준비된다. 이 제물은 제관으로 선정된 남자들이 회관에서 모두 직접 준비한다. 제물은 제기를 사용해 올리며, 따로 구입하지 않고 마을회관에 비치된 것을 사용한다.
[부대행사]
동제를 지내기에 앞서 중리마을 주민들은 마을 주변과 제단을 깨끗하게 소지한다. 14일 아침에는 당집 근처와 우물을 깨끗하게 소지하고 우물 근처에 왼새끼로 꼰 금줄을 감는다. 금줄은 당집에는 두르지 않고 마을 우물과 제터에만 감아둔다.
과거 거르제와 충제를 지내고 난 후에는 달집태우기를 하거나 마당밟이를 했지만, 현재 마을의 인구가 줄어들고 난 후에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마당밟이는 10년 전에 없어졌고, 달집태우기는 40년 전 이후로는 전해오고 있지 않다.
[금기]
거르제와 충제는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경건한 의식이므로 큰 소리가 나지 않게 조용히 지내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따라서 풍물을 치거나 큰 소리로 구호 및 구축을 외지 않는다.
제관이 선정되고 제가 끝나기 전까지 제관을 포함한 마을사람들은 궂은 곳을 가지 않고 궂은 일을 당하지 않기 위해 서로 조심한다. 특히 우물에 금줄을 감은 이후에는 제가 끝나기 전까지 그 물을 먹지 않으며, 금줄을 친 곳은 아무도 출입할 수 없다. 또, 풍물은 제가 끝난 후 보름 이후에야 비로소 칠 수 있다.
[옷차림]
과거 거르제를 지낼 때에 제관들은 한복을 입고 두루마기를 착용했다. 그러나 근래에 들어 제의 형식이 다소 간소화되면서 한복보다는 양복이나 깨끗한 옷을 착용한다.
[제비]
과거에는 동제에 드는 비용을 마을의 전답 400여 평을 통해 마련하였다. 이 마을 전답을 마을주민에게 소작 주고 동제에 필요한 만큼의 비용을 나락으로 받아서 마련하였다.
그러나 마을 전답이 저수지로 개발되면서 받은 정부 보상금을 마을기금으로 넘긴 뒤, 동제에 사용되는 돈은 마을에 초상이 날 경우 천돈을 받아서 마련하고 있다. 이 외에도 마을주민들이 성의껏 돈을 내기도 하는데, 돈을 내는 경우도 있고 제물을 직접 마련하여 현물로 기부하는 경우도 있다.
마을에 교회나 성당을 다니는 사람들도 빠지지 않고 모두 참여하는데, 이렇게 모인 돈으로 치르는 거르제와 충제의 한해 비용은 이튿날 뒤풀이까지 포함하여 20만 원 가량이다. 결산은 연말총회 때 보고한다.
[현황]
중리마을 사람들은 거르제와 충제의 영험함을 믿고 또 마을의 풍요를 기원하는 마음이 강해 제사를 이어 나가려는 의지를 강하게 보이고 있다. 마을 주민들은 모두 자신이 죽는 날까지 이어 나갈 것이며, 마을이 없어질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강한 의지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