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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마을 동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501280
한자 亭子-洞祭
영어음역 Jeongja Maeul Dongje
영어의미역 Jeongja Village Tutelary Festival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정자리 정자마을
집필자 나경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마을신앙
의례시기/일시 정월 대보름|음력 6월 1일
의례장소 마을 앞과 뒷산
제관 마을사람들

[정의]

진도군 군내면 정자리 정자마을에서 올리는 마을제사.

[개설]

본래 진도군 군이면에 속했지만,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정자리로 바뀌어 군내면에 편입되었다. 마을의 입향은 홍씨가 먼저 했다고 전하며, 다음에 들어온 밀양박씨가 현재 14대째 살고 있는 것으로 보아 400여년 이상 된 마을이다.

지금은 간척이 되었지만 예전에는 바닷가 마을이었다. 고려말에 조희주가 이곳으로 귀양을 와서 지었던 압구정이라는 정자가 있었다. 지금은 그 유허지에 창녕조씨 문중에서 비석을 세워두었다. 이 정자에서 마을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주민들의 주요 소득원은 쌀과 대파, 월동배추이다. 현재 주요 성씨로 밀약박씨가 18호, 광산김씨 1호, 진주강씨 2호, 진주정씨 8호, 경주정씨 5호, 전주이씨 6호, 남양홍씨 2호, 인동장씨 2호, 김해김씨 4호, 평택오씨 2호, 남평문씨 1호, 순흥안씨 1호 창녕조씨 1호, 해주오씨 1호가 살고 있다.

정자마을은 사람들이 많을 때에는 102호에까지 이르렀던 큰 마을이었다. 마을 공동재산으로 마을회관과 주차장이 있다. 마을조직으로는 상여계가 있는데, 1904년 3계 상여계 조직 후 1998년 2계 계로 재조직하였고, 제1상여계에 27명, 제2상여계에 25명의 회원이 참여하고 있다. 마을 내 유물·유적으로 열녀각과 열녀비가 있다.

[연원]

정자마을은 매년 두 가지의 동제를 모시고 있다. 하나는 정월 대보름에 모시는 거리제며, 다른 하나는 음력 6월 1일에 모시는 충제이다. 충제는 산제, 또는 산신제라고도 부른다.

거리제는 마을 앞 길가에서 모신다. 지금은 정류소로 쓰이며 유선각이 지어져 있지만, 예전에는 큰 나무가 서 있었다. 정자나무는 고사하여 지금은 없고, 몇 년 전에 군에서 지어준 유선각 옆에서 차일을 치고 모신다. 충제는 마을 뒷산에 올라가서 모신다. 여름이기 때문에 덥고 모기도 많지만 매년 모셔오고 있으며, 제터가 마련되어 있어 그곳에 차일을 치고 밤에 제사를 모신다.

[제관의 선정 및 역할]

거리제를 모시기 위해서 일주일 전에 제관 두 명을 뽑는다. 먼저 일진과 나이를 맞춰 생기복덕을 본다. 나이가 맞는 사람을 선정하여 집안에 궂은 일이 없는지 알아본다. 상을 당하거나 아이를 낳은 집 등은 제외되며, 정월달에 아기를 낳을 집도 안 된다. 제관은 반드시 남자 중에서 뽑는다.

부부생활을 해서도 안 되기 때문에 대개 환갑이 넘은 사람들 중에서 선정한다. 요즈음은 제관을 맡기 싫어하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제관을 선정하는 일이 어렵다고 한다.

제관으로 선정되면 매일 목욕을 한다. 제관 외에 제수를 마련할 집을 한 집 선정한다. 여자 노인 혼자 사는 깨끗한 집을 골라 제물을 부탁한다. 제물을 장만하는 집에도 금줄을 친다. 여자는 제물을 만들기는 하지만 제사를 모시는 데는 참여하지 못한다.

제사를 모시기 사흘 전에 제관의 집과 거리제를 모실 곳에 금줄을 치고 황토를 깐다. 다른 사람들, 특히 유고가 있는 사람들의 출입을 막기 위해서이다.

14일 아침에 이장이 방송을 하면 마을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나와서 거리제를 모실 곳 주변을 청소하고, 마을의 차일도 가져다 친다. 차일 속에서 거리제를 모시게 된다. 그리고 오전에 이장은 제관들과 더불어 제물을 사러 간다.

요즈음은 자동차로 읍에 가서 제물을 사온다. 제물을 사오면 제수를 만드는 집에 가져다준다. 매년 돼지머리는 빼놓지 않고 산다. 제물을 사면서 값을 깎지 않는다. 제물을 사는 데 필요한 비용은 마을자금으로 충당한다.

지금은 상수도를 쓰지만 예전에는 거리제를 모실 때만 사용하는 마을의 샘이 있었다. 그리고 충제 때도 산중에 물이 나는 곳에서 물을 길어다 썼다. 특히 예전에 충제를 모실 때는 모든 제물을 산에서 직접 제관들이 만들었지만, 요즈음은 거리제와 마찬가지로 정해진 여자 노인 혼자 사는 집에서 마련해 두면 지게에 지고 산에 오른다.

[절차]

거리제와 충제 모두 밤 11시에 시작한다. 거리제를 모시기 전에 마을사람들 중에서 몇 명이 샘굿을 치고 마을을 돌아다닌다. 샘굿이 끝나면 거리제가 끝난 후 길굿을 치기 위해 마을회관에서 대기하고 있으면서 논다.

제사는 1시간 정도 소요된다. 먼저 진설이 끝나면 초헌, 독축, 아헌, 종헌의 순서로 진행이 된다. 축문을 불사른 후에 제상에 올렸던 음식을 조금씩 떼어내 헌식을 하고, 제관들만 간단히 현장에서 음복을 한다. 이후 내전밥을 뿌리고 다닌다.

축문은 한문으로 된 것이 있지만, 지금은 번역을 하여 한글로 써서 사용하고 있다.

거리제가 모두 끝나면 마을회관에 대기하고 있는 굿을 칠 사람들을 부른다. 제터에 와서 한참 동안 길굿을 친다. 각 가정에서도 거리제를 모시는 시간에 맞춰 집안에서 차례를 모신다. 길굿을 치면 귀신들을 몰아내는 것이라 여겨 서둘러 차례를 모신다.

길굿이 끝나면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마을회관으로 돌아온다. 수고했던 사람들끼리 모여서 간단히 술과 음식으로 음복을 하고 가정으로 돌아간다.

제사를 모시는 방식은 충제의 경우도 같다. 다만 산에서 모신다는 점과 굿을 치지 않는 점이 다르다. 예전에는 충제를 모실 때, 산에서 돼지를 잡아 썼으나 지금은 돼지머리만 사다가 올린다고 한다.

[제물/용품/제구]

제관들은 제물을 장만한 집으로 가서 제물을 거리제를 모실 곳으로 가져와 진설을 한다. 주과포를 위주로 하며, 나물과 떡, 그리고 돼지머리를 진설한다. 메와 탕은 각각 1그릇씩이다. 그러나 제사가 끝나면 여기저기 뿌리고 다닐 허드랫밥을 따로 마련한다. 이것을 ‘내전’이라고도 부른다.

거리제를 마치고 나면 제관들은 갈포래와 조밥, 그리고 국을 섞은 내전밥을 양푼에 담아서 제터 주변에 골고루 뿌려준다. 이것은 잡귀들에게 주는 밥이다.

[부대행사]

동제와 관련하여 특별히 회의를 여는 것은 아니고 연말에 열리는 동계에서 동제와 관련된 내용을 보고한다. 거리제를 모시고 난 다음날인 대보름날 오전에 마을회관에 술과 음식을 갖추어 마을 노인 분들을 모셔와 대접한다. 그러나 지금은 잘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6·25전쟁 이후까지도 줄다리기를 했다. 1955년 이후에는 줄다리기가 없어진 것이 확실하다. 각 가정에서 짚을 가지고 나와서 마을 앞 공터에서 줄을 만들어 대보름날 윗마을과 아랫마을을 갈라 줄다리기를 하고 놀았다. 이때 걸둥을 친다. 줄다리기가 끝나면 적당한 곳에서 줄을 태워 없앴다고 한다.

[금기]

충제를 모실 때에는 당일 들에 나가 일을 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들판에서 사람들을 볼 수가 없다. 또 빨래를 해서도 안 되며 밖에 빨래를 걸어서도 안 된다고 한다.

[축문]

「거리제 축문」

리거리제축 안

세차계미정월을사삭십오일기미

정자리민대표 ○○○감소고우

현토지대신

때는 정월 대보름을 맞이하여 각댁마다

청소가정하여 천재활난 질병관재구설

홍수태풍 병충해등이 봄눈과같이

없에주시고 각택마다 서운이 만득하여

만사가 형통하고 농사가 대풍년을 이루도록

하여주시여 후사에 근심이 없게하여

주시기 바라면서 삼가 험소한 주찬으로서

대신의게 헌신하오니 흠양하소서

「충제 축문」

정자리민대표는 산신령님께 삼가고하나이다

해는 바구어 집집마다 천결하여

리민 모두가 편안하고 화합단결하여 번영을

누리며 농사를 풍요롭게 하옵시고

천재팔난 질병충해등을 소멸하시고

아무 어려움이 없도록 신령님게 부우

하여주소서

삼가 맑은 술과 포과 등 제물을 갖추어 정성껏

올이오니 흠향하소서

[현황]

현제 거리제나 충제를 폐지하자는 의견이 마을에 돌지는 않는다. 다만 제관을 서로 맡지 않으려고 하지만, 동제를 모시지 말자는 말은 없다고 한다. 반대 의견이 있다고 하더라도 마을의 어른들이 말을 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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