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5015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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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晉州河氏 |
영어음역 | Jinju Hassi |
영어의미역 | Jinju Ha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남도 진도군 |
집필자 | 김정호 |
세거지 |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향동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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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성촌 |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삼막리|고군면 향동리 |
입향시기/연도 | 1550년대 |
성씨시조 | 하진(河珍)|하공진(河拱辰) |
입향시조 | 하린(河潾) |
[정의]
전라남도 진도군의 세거성씨 중 하나.
[연원]
진주하씨는 하진(河珍)을 시조로 하는 사직공파(司直公派)와 하공진(河拱辰)을 시조로 하는 시랑공파(侍郞公派)가 있다. 하진은 고려 정종(1034~1046)대와 문종(1046~1083)대에 사직 벼슬을 하였다. 하공진은 진주 출생으로, 고려 현종 때 상서공부시랑을 지냈는데 거란의 침입이 있었을 때 거란군에게 잡혀갔으나 끝까지 굴복하지 않고 요(遼)나라 왕 성종(聖宗)의 국문을 받고 항사(抗死)했다.
[입향 경위]
하진으로부터 17세손인 하린(河潾)은 당시 진도 최대 토반이었던 창령조씨 조중문(曺仲文)의 사위가 되면서 진도로 들어와 정착하게 되었다. 진도의 진주하씨는 입향시조인 하린(河潾)의 할아버지 하숭리(河崇理)[?~1543]가 통덕랑벼슬을 지냈기 때문에 통덕랑공파(通德郞公派)라고 불리기도 한다. 하숭리의 아버지인 하주(河澍)는 전라북도 정읍에 살다가 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으로 옮겨 살았다. 그 뒤 하숭리의 손자 하린(河潾)이 진도에 정착하면서 진도의 명문 가문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세거 현황]
하린은 하세청(河世淸)·하세담(河世淡)·하세징(河世澄) 등 세 아들을 두었는데, 그 중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삼막리 지역에 자리 잡은 하세담의 후손들이 가장 번성했으며 임회면의 중매리와 봉상리에도 후손들이 살고 있다.
또한 하린의 숙부 하익창(河益昌)[1495~1557]의 후손들이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향동리 지역에 세거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흔히 고군 향동파라 불린다.
진주하씨는 2004년 말 기준으로 진도에 166가구가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묘역]
하린의 아버지 하극창(河克昌)의 묘가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정거름재에 있다. 하극창의 동생 하익창의 묘는 전라남도 해남군에 있는데, 이것으로 보아 하린이 진도에 들어와 살면서 아버지 하극창의 묘를 진도로 옮긴 것으로 짐작된다.
[관련유적]
진주하씨의 사우(祠宇)로,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호구리에 보은사(報恩祠)가,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삼막리에 원모사(遠慕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