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5008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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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姓氏 |
영어음역 | seongssi |
영어의미역 | family name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남도 진도군 |
집필자 | 김정호 |
[정의]
전라남도 진도를 본관으로 하거나 진도에 세거해 온 성씨.
[변천]
조선 초기에 편찬된『세종실록 지리지(世宗實錄 地理志)』 ‘진도군조’는 진도 토박이 성씨를 살필 수 있는 자료로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세종실록 지리지』 ‘진도군조’에는 조선 개국 후 없어진 고을 이름과 토성(土姓)이 나오는데, 이 토성들이 고려 때 진도 토박이 성씨로 추정된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나타난 진도 성씨는 임씨(任氏)·김씨(金氏)·이씨(李氏)·한씨(韓氏)·정씨(鄭氏)·조씨(曺氏)·여씨(呂氏)·평씨(平氏)·유씨(兪氏)·정씨(丁氏)·김씨(金氏)·배씨(裵氏)·박씨(朴氏)·나씨(羅氏)·임씨(任氏) 등이다.
이때까지도 토착 성씨들은 그 고을 이름을 본관(本貫)으로 썼다. 그 예로 고려 중기 명신인 이규보(李奎報)[1160~1241]의 처는 진도김씨라는 기록이 있고 고려 말기 서도병마사를 지낸 김형숙(金亨叔)의 처는 임회박씨(臨淮朴氏)라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명문거족의 본관 성씨들에 합보를 시작하는 것이 유행하였다. 이에 조선 후기인 1759년(영조 35)에 편찬된『여지도서(輿地圖書)』진도편에서는 진도군 내 토박이 본관 성씨가 자취를 감추었다.『여지도서』에 나오는 진도 군내 성씨는 11개 성씨로, 김해김씨·연안이씨·청주한씨·창녕조씨·부안김씨·홍주송씨·성주정씨·단양배씨·밀양박씨·나주나씨·현풍곽씨 등이다.『여지도서』와 거의 같은 무렵인 1761년 진도 고군면 향동 출신인 김몽규(金夢奎)[1694~1775]가 지은『옥주지(沃州誌)』에도 22개 성씨가 나오지만, 진도 본관 성씨는 찾아볼 수 없다.
조선 말기에 편찬된『증보문헌비고』에는 고려 및 조선 초의 토성을 포함하여 진도 본관 성씨가 24개 성씨로 나타난다.『증보문헌비고』가 구한말 이전의 여러 기록에서 모은 진도 본관 성씨로는, 진도김씨·진도임씨·진도이씨·진도한씨·진도정씨·가흥조씨·가흥정씨·가흥김씨·가흥여씨·가흥평씨·가흥유씨·임회배씨·임회박씨·의신임씨·의신김씨·의신이씨·의신나씨·진도최씨·진도조씨·진도장씨·진도임씨·가흥임씨·가흥소씨·임회최씨 등이 있다.
일제강점기인 1923년에 만들어진『진도군지』에는 옛 성씨로 임씨·김씨·이씨·한씨·정씨의 5개 성씨를 싣고, 당시의 성씨로 39개 성씨를 쓰고 있다. 이 기간에 새로 추가된 성씨는 20개 성씨이고, 소멸된 성씨는 3개 성씨로 진주정씨·비인최씨·해남윤씨이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할 때, 1761~1923년 사이에 새로 유입된 성씨는 20개 성씨로, 진주소씨·양천허씨·경주이씨·신안주씨·전주이씨·광산노씨·광산이씨·남평문씨·평택임씨·인동장씨·장흥임씨·나주임씨·경주정씨·연안차씨·경주김씨·이천서씨·문의박씨·전주최씨·압해정씨·수원백씨 등이다.
그러나 이는 『옥주지』와 『진도군지』를 토대로 한 결과일 뿐 현재 진도에 살고 있는 주민을 상대로 하여 보첩을 확인하면 훨씬 많은 성씨들이 1761년『옥주지』편찬 이전에 유입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황]
1985년 인구조사 때 진도군 내 성씨는 82개였고, 본관 수는 664본(本)에 달하고 있었다. 2000년 인구 조사 때 집계된 진도군 내 30대 본관 성씨는 다음과 같다.
(2000. 11. 1. 기준, 숫자는 가구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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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