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5012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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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濟州梁氏 |
영어음역 | Jeju Yangssi |
영어의미역 | Jeju Yang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남도 진도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정호 |
세거지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상가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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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성촌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상가리|임회면 백동리 |
입향시기/연도 | 1440년대 |
성씨시조 | 양을나(良乙那)|양보숭(梁保崇) |
입향시조 | 양진회(梁進淮)[1403~1479] |
[정의]
전라남도 진도군의 세거성씨 중 하나.
[연원]
삼성신화(三聖神話)에 양을나(良乙那)가 나오는 제주양씨의 시조(始祖)이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원래는 사람이 살지 않던 제주도에 고을나(高乙那)·부을나(夫乙那)와 함께 땅에서 솟아나왔다고 한다. 본래는 양성(良姓)을 썼으나 신라 태종무열왕 때 탐라의 왕족이던 양탕(良宕)이 신라에 들어가 벼슬하면서 사성(賜姓)에 의해 양씨(梁氏)로 개성하였다. 제주양씨는 고려 말엽의 인물인 양보숭(梁保崇)을 증시조로 하여 계대(系代)한다.
[입향경위]
제주양씨의 진도 입향시조는 양진회로, 증시조 양보숭의 5세인 양동재의 증손이다. 양진회의 숙부는 1437년 진도군이 해진군에서 분리될 때 초대 진도군수를 지냈던 양경(梁瓊)으로, 양진회 역시 숙부를 따라 나주에서 진도 군내면 상가리(上加里) 지역에 자리를 잡고 진도군청 훈도(訓導)를 맡았다.
[세거현황]
양진회보다 300여 년 뒤에 진도에 들어온 양달수의 후손 양찬문은 진도군 임회면 백동리에 자리 잡았다. 이들을 백동집파라 하며, 10세 자손이 세거하고 있다. 양달수의 또 다른 후손들도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칠전리, 진도읍 포산리·해창리 등지에 세거하고 있다.
또한 양진회의 후손 중 일부가 진도군 군내면 상가리로 들어와 세거하였는데 이들을 금성군파(錦城君派)라고 한다.
[집성촌현황]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월가리·상가리, 지산면 길은리·소포리, 고군면 용장리·오산리, 의신면 침계리·만길리·금호도·활곡리, 진도 읍내 등지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