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5015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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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土器 |
영어음역 | togi |
영어의미역 | earthenware |
이칭/별칭 | 질그릇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남도 진도군 |
시대 | 선사/선사,고대/삼국 시대/백제,고대/삼국 시대/신라,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
집필자 | 이영문 |
[정의]
찰흙(점토)을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용기.
[개설]
구석기시대에는 주로 석기만 사용하고 토기는 아직 출현하지 않았다. 토기의 출현은 신석기시대부터이다. 이는 구석기시대의 수렵, 채집생활이 신석기시대에 와서 농경을 바탕으로 하는 정착생활로 전환되면서 식량을 저장하고, 음식을 끓이고, 식수를 담아두는 용기가 필요하게 되면서 출현하였다. 처음에는 자연적인 구덩이나 풀로 만든 바구니, 목기 등을 토기 대신에 사용하였으나 점차 흙을 반죽하여 일정한 형태를 만들어 쓰게 되는데 우연한 기회에 불에 타서 단단해진 것을 보고 토기가 발명되었다고 한다.
신석기시대에는 빗살무늬토기가 주류를 이루며 융기문, 이중구연토기, 단도마연토기 등이 있다. 빗살무늬토기는 사질이 많은 태토를 사용하고, 토기 표면에 빗 같은 다치구(多齒具)의 시문구를 새기거나, 그어 만든 각종 문양이 들어가 있다.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토기는 무문토기, 홍도, 점토대토기, 흑도 등이 있다. 무문토기는 일반적으로 갈색 내지는 황갈색의 색상, 무문양, 평저를 기본으로 하는 기형, 장석·석영 등 화강암계의 굵은 사립이 섞인 태토를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철기시대에는 무문토기와 타날문토기가 사용되었다. 무문토기에는 청동기시대의 무문토기가 발전되어 경도가 높아지고, 기형이 다양해졌다. 기형은 심발형, 옹형, 호형, 파수부, 대부, 발형토기와 잔, 시루, 고배, 토기뚜껑 등 다양하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에서 각각 특징적인 토기들이 제작·사용되었다. 고구려는 중국과 가까워 한식 계통의 회색 또는 흑회색의 평저토기와 파수부토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표면을 마연하여 광택이 나는 마연흑도도 있고, 광구평저사이호와 뚜껑이 있는 원통형 삼족기도 있다. 표면은 대체로 무문이지만 직선, 파상문, 연화문 등이 어깨 부분에 시문되어 있다. 백제 토기에는 승석문이 보편적으로 시문되고, 삼족기가 존재하며 평저토기가 많고, 형태가 특이한 기대가 출토되는 것이 특징이다. 백제토기는 태토나 색상으로 보아 3종류로 나누어진다. 신라토기는 타날문토기가 발전한 것으로 정선된 태토를 등요에서 환원염으로 구웠으며 녹로를 사용하여 다량 생산하였다. 고온으로 구워진 경질토기로 자연유가 부분적으로 덮여진 경우도 있다. 기형은 기본적으로 고배와 장경호가 있으며, 특색 있는 기형으로 동물형토기와 토우가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토기는 태토나 소성이 신라토기와 같으나 기형이나 문양에 많은 변화가 있다. 즉 기대나 이형토기가 없어지고, 고배, 장경호의 받침이 짧아지며, 뚜껑 꼭지가 보주형으로 변한다.
[현황]
진도지역에서는 신석기시대 토기가 발견된 적이 없고, 청동기시대의 경우도 무문토기가 편으로만 소수 출토된 것이 전부이다. 이는 발굴조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결과이다.
그러나 철기시대에 해당하는 토기들이 진도군 고군면 오산리 주거지와 수혈유구에서 발견되었다. 가장 많은 유물이 출토된 2호 주거지에서는 옹형토기, 호형토기, 발형토기, 시루, 주구토기, 양이개, 완형토기 등이 출토되었으며, 거치문이 찍힌 대형옹형토기가 주거지 내부에서 저장용 토기로 확인되어 주목된다. 수혈유구에서 수습된 유물로는 연질토기가 주를 이루며 장란형토기, 발형토기, 옹형토기, 주구토기, 호형토기, 시루 등이 있다. 이러한 토기들은 전라남도 영산강 유역의 토기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동일한 토기 문화권 속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의의와 평가]
토기는 신석기시대 이래로 유적 출토품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유물이다. 각 시대별 또는 같은 시대라도 지역에 따라 다양한 토기가 제작되어 고고학적 성격을 파악하는 데 대표적이고 표지적인 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