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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501774
한자 具仁垕
영어음역 Gu Inhu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전라남도 진도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정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무신
아버지 구성(具宬)|구홍(具宖)
어머니 정억령(鄭億齡)의 딸
성별
생년 1578년(선조 11)연표보기
몰년 1658년(효종 9)연표보기
본관 능성(綾城)
중재(仲載)
유포(柳浦)
시호 충무(忠武)
추증 능천부원군
상훈 정사공신(靖社功臣)|효충분위병기결책영국공신(效忠奮威炳幾決策寧國功臣)
대표관직 전라병마사|포도대장|충청병사|수원방어사|어영대장|판의금부사|우의정|좌의정

[정의]

조선 중기의 무신.

[개설]

조선중기 선조 대부터 효종 대까지 활약한 무신으로, 1437년(세종 19) 진도 설군 이후 제105대 진도군수로 1621~1623년까지 재임하였다.

[가계]

본관은 능성(綾城). 자는 중재(仲載), 호는 유포(柳浦). 증조는 능성군(綾城君) 구순(具淳), 할아버지는 좌찬성 구사맹(구思孟), 아버지는 대사성 구성(具宬)으로 인조의 외종형이다. 어머니는 별좌 정억령(鄭億齡)의 딸이다. 뒤에 구홍(具宖)에게 입양되었다.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이다.

[생애]

1578년(선조 11)에 태어났다. 1603년(선조 36) 무과에 급제하여 1606년(선조 39) 선전관이 되고, 고원군수·갑산부사 등을 지냈다. 1621년(광해군 13) 진도군수가 되었고, 1623년(인조 1)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통제사로 자리를 옮겼다. 인조반정 뒤 한성부윤을 거쳐 전라병마사, 포도대장, 충청병사, 수원방어사, 어영대장, 판의금부사, 우의정, 좌우정 등을 역임하였다. 1658년(효종 9)에 향년 81세로 세상을 떠났다.

[활동사항]

1621년(광해군 13) 진도군수가 되어 1623년까지 재임하였다. 진도군수로 재임하는 동안 진도 출신의 김해김씨 김름(金澟)과 인연을 맺었고, 서울로 돌아간 뒤 김름을 추천하여 평안도 삼화부사(三和府使)를 거쳐 제주도 정의현감을 역임하게 하였다.

1623년(인조 1) 반정 당시 미처 진도에서 서울에 도달하지 못해 참여하지 못했으나, 처음부터 계획을 세운 공로로 정사공신(靖社功臣) 2등에 책록되고 능천군(綾川君)에 봉해졌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는 군사 3,000명을 거느리고 남한산성에 들어가 국왕을 호위했으며, 그 공으로 어영대장이 되었다.

1644년(인조 22)에는 심기원(沈器遠)의 모역 사건을 적발하여 처리한 공으로 영국공신(寧國功臣) 1등에 책록되고 능천부원군(綾川府院君)에 봉해졌다. 1654년(효종 5) 사은사로 청나라에 다녀온 뒤에 처형당한 소현세자빈(昭顯世子嬪) 강씨(姜氏)의 신원을 요구하다 죄를 입은 김홍욱(金弘郁)을 옹호하다가 삭직당했으나 곧 복관되어 좌의정에 올랐다.

구인회는 공신인 동시에 인조의 외척으로서, 당시 공신들 간의 대립이나 공신들과 일반 사류들 사이의 대립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취함으로써 별다른 기복 없이 정치적 위치를 지킬 수 있었다.

[상훈과 추모]

1623년(인조 1) 정사공신(靖社功臣) 2등에 책록되었고, 1644년(인조 22)에는 효충분의병기결책영국공신(效忠奮義炳幾決策寧國功臣)에 책록되고 능천부원군(綾川府院君)에 봉해졌다. 시호는 충무(忠武)이다.

[의의와 평가]

진도군수를 역임한 사람 가운데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였고 높은 지위에 올라간 인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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