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5017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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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泰齊 |
영어음역 | Nam Taej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남도 진도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정호 |
[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개설]
1734년(영조 10)~1735년(영조 11)까지 제181대 진도군수를 역임하였다.
[가계]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원진(元鎭)·관보(觀甫), 호는 담정(澹亭)·학야(鶴野). 증조부는 남선이고, 할아버지는 도승지 남치훈(南致熏)이고, 아버지는 공조좌랑 남필명(南弼明)이다. 어머니는 한성판윤 신후재(申厚載)의 딸이다. 아들은 남현로(南玄老)·남경로(南庚老)·남인로(南寅老)이고, 손자는 남리익(南履翼)·남리무(南履懋)이고, 증손으로 남헌교(南獻敎)가 있다.
[생애]
1699년(숙종 25)에 태어났다. 1723년(경종 3)과 1727년(영조 3)에 각각 사마시와 문과에 급제하였다. 이후 예조좌랑, 병조좌랑, 진도군수, 개성유수, 대각을 두루 거쳐 대사헌, 형조판서, 대제학, 이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1776년(정조 즉위년)에 향년 78세로 세상을 떠났다.
[활동사항]
1728년(영조 4) 『숙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했다. 그 해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나자 죄인 국문 등에 신속히 대처한 공으로 양무원종공신(揚武原從功臣) 1등에 녹훈되었다.
1734년(영조 10) 정언으로 당시 영의정 심수현(沈壽賢)을 탄핵하다가 진도군수로 좌천되었다. 조현명(趙顯命)의 주청으로 1735년(영조 11) 장악원첨정을 시작으로 대각(臺閣)을 두루 역임하는 동안 기강 퇴폐, 재용 낭비, 풍속 괴패, 시파와 벽파의 논쟁 등에 대한 시정을 요구하는 상소를 많이 올렸으나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오히려 유배당하는 일이 많았다.
나이 70세가 되자 모든 벼슬을 사양하고 숭록(崇祿)으로 승계한 뒤 기로소에 들어갔다. 성품이 단정하고 스스로 행동을 잘 지켜 관직 생활 50년 동안 파당적인 논쟁에 휩쓸리지 않았다.
[학문과 사상]
문장이 우아하고 시문에 화실(華實)이 구비되었으며, 제자백가에도 통달했다.
[저술]
저서로는 『담정유고』가 있다.
[상훈과 추모]
양무원종공신(揚武原從功臣) 1등에 책록되었고, 시호는 청헌(淸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