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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501810
한자 朴思儉
영어음역 Park Sageom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전라남도 진도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정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무신
대표관직 진도군수

[정의]

조선 후기의 무신.

[개설]

1756년~1758년까지 3여 년 동안 제203대 진도군수로 재임하였다.

[활동사항]

박사검이 진도군수로 있던 시기에는 잇따른 흉년으로 세곡이 바닥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조정에서는 세수(稅收)를 늘리기 위해 군량미(軍糧米)의 확보나 진곡(賑穀)의 회수가 부진한 지방 수령을 엄하게 문초하였다.

조정에서는 군량미 확보의 성적을 삼등분(三等分)하였다. 제일 성적이 나쁜 거말(居末)의 경우 나문(拿問: 잡아다가 심문함)으로 잡아갔으며, 거이(居二)는 결장(決杖)으로 매를 맞았으며, 거삼(居三)은 추고(推考)로 관리의 허물을 추문(推問)하였다. 진곡 회수의 성적은 이등분하여 거말(居末)은 결장(決杖: 매일 때림), 거이(居二)는 추고(推考)였다.

당시 진도군수 박사검은 군량미 확보와 진곡 회수에 있어 가장 실적이 부진한 거말(居末)에 해당되어 처벌을 받았다.

1778년(정조 2) 정조의 논어 주강(晝講)에 참여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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