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5018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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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成仁 |
영어음역 | Park Seongi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남도 진도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정호 |
성격 | 무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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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 | 남 |
본관 | 함양(咸陽) |
호 | 지족당(知足堂) |
대표관직 | 양주목사|진도군수|중화현감 |
[정의]
조선 중기의 무신.
[가계]
본관은 함양(咸陽). 호는 지족당(知足堂). 청백리 박수지(朴遂智)의 5대손이다.
[활동사항]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였으나, 광해군 때 이이첨(李爾瞻)이 정권을 잡고 난정을 하자 이를 통박하다가 그의 무고로 10년간 철산(鐵山)에 유배되었다.
1623년(인조 원년) 10월 인조반정으로 특별히 기용되어 양주목사에 제수되었다가 그 해 12월에 진도군수로 부임하였다. 진도군수로 재임 중 지력산 목장의 말을 잘 관리하여 번식시킨 공을 인정받아 1625년(인조 3) 2월 21일 상을 받았다.
1634년(인조 12) 3월 20일 중화현감(中和縣監)에 제수되었으나 곧바로 지평 이척연(李惕然)의 계에 따라 체직되었다. 1649년(인조 27) 2월 15일 예조좌랑 이양복(李陽復)이 상(喪)을 당하자 치제(致祭)하기 위해 흥양(興陽)으로 파견되었다.
[학문과 사상]
평생을 성리학을 궁구한 사간원정언 박여량(朴汝樑) 등과 교유하였다. 만년에는 향리 농장에 돌아가 ‘지족(知足)’이라는 편액을 걸고 학문에 전념하였다.
[상훈과 추모]
진도군에 진도군수 재임 시 박성인의 공을 기리는 선정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