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5018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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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尹承解 |
영어음역 | Yun Seungha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남도 진도군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김정호 |
성격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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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 윤유연(允裕延) |
성별 | 남 |
본관 | 양주 |
자 | 자장(子長) |
대표관직 | 진도현령|감찰어사|상서도관원외랑 |
주요활동/연도 | 1282년 진도현령으로 부임함 |
[정의]
고려 후기의 문신.
[가계]
자는 자장(子長). 수안현(守安縣)[현재 경기도 양주] 사람이다. 삼한공신(三韓功臣) 윤봉(尹逢)의 7세손으로, 검교호부상서(檢校戶部尙書) 윤유연(尹裕延)의 둘째아들이다.
[생애]
생몰년은 알려져 있지 않다. 사마시에 합격 후 지수주사판관(知水州事判官), 현덕궁녹사(玄德宮錄事), 좌우위녹사참군사(左右衛錄事參軍事), 진도현령, 감찰어사, 상서도관원외랑(尙書都官員外郎)을 역임하였다.
[활동사항]
18세에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문과에 두 번 낙방하여 음보(蔭補)로 지수주사판관(知水州事判官)이 되었다. 현덕궁녹사(玄德宮錄事)를 거쳐 좌우위녹사참군사(左右衛錄事參軍事)가 되고 얼마 뒤 진도현령이 되었다.
진도현령 재임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의 묘비(墓碑) 명문(銘文)의「계미년(癸未年) 배하지병(輩下之兵)」이라는 말을 단서(端緖)로 곽충로가 편찬한『진도군지』(1976)에서는 고려 의종 10년인 1156년으로 추측하고 있다.『인물로 본 진도역사의 빛과 그림자』(2002)를 집필한 박병술은 「제2장 진도군수열전」에서 1280년대로 추정하기도 한다.
그 뒤 신호위녹사참군사(神虎衛錄事參軍事)가 되었다가, 1293년(충렬왕 19) 신호위별장에 임명되었으나 무관직이라 사양하였다. 뒤에 합문지후(閤門祗侯)를 거쳐 감찰어사가 되었고, 이후 서북도(西北道)의 분대어사(分臺御史)가 되었다.
다시 내직으로 옮겨 상식국(尙食局)의 봉어(奉御)가 되었다가 상서도관원외랑(尙書都官員外郎)을 역임하였다. 인품이 단아하고 정직하여 할 말은 과감하게 하였으며, 청렴하고 검소한 생활을 하면서 정사를 바르게 이끌어 백성들로부터 칭송을 받았다고 한다.
[의의와 평가]
윤승해는 관(官)으로서 “진도중흥지조(珍島中興之祖)”라고 일컬어지고 민(民)으로서 “진도개화지조(珍島開化之祖)”라고 일컬어진다고 노소재(盧蘇齋)가 표현했을 정도로 진도현령으로서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