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5018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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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尹處信 |
영어음역 | Yun Cheosi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남도 진도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정호 |
성격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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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 윤사수(尹思修) |
형 | 윤처성(尹處誠)|윤처경(尹處敬)|윤처공(尹處恭) |
본관 | 해평(海平) |
대표관직 | 남원부사(南原府使)|진도군수 |
[정의]
조선 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해평(海平). 아버지는 참지의정부사(參知議政府事) 윤사수(尹思修)이다. 할아버지는 동지밀직(同知密直) 윤방안(尹邦晏)이다. 형제로는 형 윤처성(尹處誠)·윤처경(尹處敬)·윤처공(尹處恭)이 있다.
[활동사항]
과거에 우수한 성적으로 급제하였다. 1442년(세종 2)부터 1444년(세종 4)까지 제4대 진도군수로 재임하였다. 1442년(세종 24) 진도군수로 재임하던 중 군민 수명을 함부로 곤장(棍杖)을 때려 죽게 했으나 때마침 특사로 용서 받았다. 당시 사헌부의 계청(啓請)으로 고신(告身:임관 사령서)을 빼앗겼다고 한다.
그 뒤 남원부사(南原府使)로 영전되었으나 그곳에서 다시 군민을 곤장으로 죽게 하여 탄핵받았다. 1452년(문종 2)에 경내(境內)의 사사전(寺社田)을 빼앗았다는 이유로 형조정랑(刑曹正郞) 이계수(李桂遂)로부터 국문(鞫問)을 받았다. 이후 여주에 부처(付處)되었다가 1472년(성종 3) 방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