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5018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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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任三鉉 |
영어음역 | Im Samhyeon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성내리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정호 |
성격 | 관리인|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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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성내리 |
성별 | 남 |
생년 | 1874년 |
몰년 | 1948년 5월 20일 |
본관 | 장흥 |
호 | 호석(湖石) |
대표경력 | 운림산방 관리 |
[정의]
조선 후기의 화가이가 운림산방의 관리인.
[개설]
본관은 장흥. 자는 광성(廣成), 호는 호석(湖石). 오위장을 지낸 임경록(任慶錄)의 아들로 1874년에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성내리에서 태어났다. 아들은 임순재(任順材)이다. 1948년 5월 20일 향년 75세로 별세했다.
[활동사항]
임삼현은 16세가 되던 1889년에 소치 허련의 문하에 들어가 그림 공부를 하면서 운림산방의 살림을 맡았다. 1893년 허련이 타계한 후에는 미산 허형 밑에서 그림 및 글씨를 연마하면서 허련의 유언에 따라 운림산방의 관리를 맡아왔다. 허형이 1912년 강진 병영으로 떠나자 1914년에 운림산방을 떠났다 한다.
1894년 동학농민전쟁 때는 아버지 임경록과 수성군에 가담하여 동학군 38명을 붙잡아 치료한 죄목으로 우수영에 불려가 곤장을 맞았다는 얘기가 구전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