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700248 |
---|---|
한자 | 官校洞 |
이칭/별칭 | 인천 부내,인천 읍내,인주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관교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강필성 |
[정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속하는 법정동.
[명칭 유래]
관교동(官校洞)이라는 지명은 관청과 향교가 있는 ‘관청리’라는 뜻에서 생긴 명칭이다. 원래는 인천의 구읍으로, 1914년 부천군 문학면 관교리가 되었고, 광복 직후인 1946년 관교동으로 개칭되었다. 인천도호부 관아가 있어 인천 부내, 인천 읍내, 인주 등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형성 및 변천]
관교동은 조선 시대 인천부의 중심 소재지였으며 이 때문에 읍내로 통용되었다. 1914년 4월 1일 부천군 문학면 관교리가 되었고, 1936년 10월 1일 인천부로 편입되었다. 1946년 1월 1일 관교동으로 고쳐졌다.
1927년 고인돌의 발굴로 미루어 보아 인천광역시 남구 관교동은 문학동과 더불어 신석기 시대부터 선조들이 정착한 지역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인근의 문학산은 미추홀 왕국의 발상지로서 유서 깊은 역사의 고장이기도 하다.
1968년 1월 1일에는 구 설치에 따라 행정동인 인천시 남구 문학동에 편입되어 동정 업무를 수행하여 오다가, 1981년 인천시가 직할시로 승격되면서 문학동은 인천직할시 남구 문학동이 되었으며, 1995년 직할시가 광역시로 바뀌면서 인천광역시 남구 문학동이 되었다.
이듬해인 1996년 3월 1일부터 관교동이 문학동에서 분동되어 정식적인 행정동인 인천광역시 남구 관교동으로 출범하였고, 1999년 7월 22일부터 주민 자치 센터 시범동으로서 ‘관교 문화의 집’을 운영하였다. 2018년 7월 1일 「인천광역시 남구 명칭 변경에 관한 법률」에 의거, 남구 명칭이 미추홀구로 변경됨에 따라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관교동이 되었다.
[자연 환경]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의 관교동, 문학동 일대는 조선 시대에 인천도호부가 있었던 중심지였으며, 북쪽의 수봉산과 남쪽의 문학산 사이에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다.
[현황]
관교동의 면적은 0.90㎢이다. 2018년 8월 31일 현재 총 6,510가구, 1만 6657명[남 8,176명, 여 8,481명]의 주민이 살고 있으며, 24통 113개 반으로 통·반 조직이 구성되어 있다.
관교동 지역에는 인천 관교 초등학교, 남인천 여자 중학교, 관교 중학교 등의 교육 기관이 있으며, 동아 아파트, 풍림 아파트, 쌍용 아파트 등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그 밖에 인천 종합 터미널, 롯데 백화점, 농산물 도매 시장 등이 있어 인천광역시의 교통과 유통, 쇼핑의 중심지로 발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