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7002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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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칭/별칭 | 여의실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고지명 |
지역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 |
집필자 | 이영수 |
[정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에 있었던 경주 김씨의 집성촌.
[개설]
여우실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의 옛 이름으로, 조선의 개국 공신인 계림군(鷄林君) 김균(金稛)의 3세손인 김종(金宗)의 후손이 18대에 걸쳐 500년 동안 살아 온 경주 김씨의 집성촌이다.
2012년 현재 여우실의 자리에는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청과 청소년 회관 등이 자리하고 있다. 2004년 9월에 경주 김씨 문중 종친과 미추홀구 학산 문화원이 주축이 되어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종합 민원실 앞 화단에 ‘여우실 경주 김씨 종가터’라고 적힌 표지석을 세웠다.
[형성 및 변천]
경주 김씨 집성촌인 여우실의 역사는 조선의 개국 공신인 김균의 3세손인 김종이 1450년경 한양에서 이거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조선 후기를 거쳐 오늘날까지 많은 인재를 배출한 명가의 터전으로 18대가 한 자리를 지켜왔다. 여우실에는 오랫동안 경주 김씨 문중의 선영이 있었다.
일제 말이었던 1940년, 일본인의 거주지가 도심에서부터 점점 확장해오면서 현재의 숭의 로터리 일대까지 밀려왔다. 주변에 도로가 뚫리고 경주 김씨 선영과 마을이 두 동강 나자 선영을 경기도 시흥시 미산동으로 이장했다. 1996년에 경주 김씨 종가와 사당마저 헐리게 되었고 그 자리에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종합 민원실이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