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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성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700351
한자 邵城縣
이칭/별칭 경원군,인주,경원부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시대 고대/삼국 시대/신라
집필자 이세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지명
관련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제정 시기/일시 757년연표보기 - 매소홀현을 소성현으로 개칭

[정의]

신라 때 현재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했던 한주(漢州) 율진군(栗津郡)의 영현(領縣).

[개설]

본래 고구려의 매소홀현(買召忽縣)이었으나, 진흥왕 때 신라의 영토가 되었으며, 757년(경덕왕 16) 소성현(邵城縣)으로 개칭되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통일 이후 확대된 영토를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하여 685년(신문왕 5) 신라는 전국을 9주(九州)로 개편하였고 5소경(五小京)을 정비하였다. 신문왕의 지방 제도 개편 당시 지금의 인천광역시 지역은 한산주(漢山州)에 속하였는데, 1소경·27군·46현이 있었다.

경덕왕은 즉위 이후 진골 귀족 세력을 제압하고 전제 왕권 확립을 위하여 한화 정책(漢化政策)을 실시하였다. 그 일환으로 관제를 정비함과 동시에 757년(경덕왕 16) 전국의 지명을 한자화하였다. 이때 한산주한주로 개명하고 한주에 속한 각 군현의 지명도 모두 한자식으로 개명하였다.

[변천]

고려 현종(顯宗) 때, 수주(樹州)[현 인천광역시 북구]의 속현으로 삼았다가 숙종(肅宗)경원군(慶源郡)으로 승격시켰다. 인종(仁宗)인주(仁州)로 고치고 지주사(知州使)로 삼았으며, 공양왕(恭讓王)경원부(慶源府)로 승격시켰다.

조선에 들어서는 태조(太祖)가 다시 인주라고 하였으며, 1414년(태종 14) 인천군으로 고쳤다. 1459년(세조 5)에 소헌 왕후(昭憲王后)로 인하여 도호부(都護府)로 높였으나, 1698년(숙종 14)에 다시 현으로 복구시켰다가 1903년(고종 광무 7년)에 군으로 고쳤다.

[관련 기록]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5, 잡지 4, 지리 2, 한주에는 “소성현은 본래 고구려 매소홀현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의 인주이다(또는 경원이라고도 하였다. 매소는 미추라고도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권16, 여지고 4, 군현 연혁 2, 경기에는 “현종 때 수주에 편입시켰다가 숙종경원군으로 승격시켰고, 인종인주로 고치고 공양왕경원부로 승격시켰다. 태종 14년에 지금의 이름으로 고치고 군으로 삼았으며, 세조 5년에 부로 승격시키고, 숙종 14년에 복구하고, 고종 광무 7년에 군으로 고쳤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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