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7016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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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農樂-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놀이/놀이 |
지역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
집필자 | 서종원 |
[정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집단 노동[두레] 과정이나 명절 등에 흥을 돋우기 위해서 연주되는 전통 놀이.
[개설]
농악 놀이는 농민들 사이에서 예부터 전해 온 농악[풍물]에 맞춰 노는 놀이로, 김매기, 논매기, 모심기 등 힘든 일을 할 때 일의 능률을 올리고 피로를 덜기 위해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농악 놀이는 오늘날 명절이나 각종 행사가 있을 때 흥을 돋우기 위해 행해지기도 한다. 농악 놀이는 여러 사람이 참여한다는 점에서 집단적이고 대중적인 놀이라 할 수 있다.
[연원]
농악 놀이는 매구·풍장·풍물 등으로 불리는 음악에 맞춰 행해지는 다양한 놀이까지 포함한다. 오늘날 행해지고 있는 농악 놀이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추정하는 일은 쉽지 않다. 다만 농악 놀이가 고대 국가에서도 행해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그 역사는 오래전으로 올려 잡을 수 있다.
일부 연구자들은 고대 국가의 풍속을 기록한 진수(陳壽)의 『삼국지(三國志)』 위서 동이전에 보이는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예의 무천 같은 제천 의식에서 농악의 기원을 찾는다. 이는 악가무(樂歌舞)를 수반한 제천 의식이 현재의 농악과 비슷한 성격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농악이 형성된 시점은 아마도 조선 후기에 이앙법(移秧法)이 널리 보급되면서 농업 생산력이 증대된 시기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대규모의 집단 노동이 이루어지면서 노동의 신명을 돋우기 위한 풍물패의 음악이 시작되었고, 이것이 노동 현장뿐만 아니라 각종 의식이나 놀이에 두루 쓰이기 시작하면서 농악이 발전했을 것이다.
한편 또 다른 일부 연구자들은 농악의 기원에 관해 군대 기원설을 제기하기도 한다. 농악에는 실제로 군대와 관련된 용어와 연행(演行)이 많다. 농악 패는 여러 모양의 진(陣)을 짜고, 농악 패의 기수가 드는 깃발도 군대의 영기와 각종 깃발에서 비롯된 것이며, 농악 패가 쓰는 전립(戰笠)[상모]은 군대에서 사용하는 것이다. 또한 농악패의 악기도 군대와 관련된 것이 적지 않다. 징과 북은 군대의 전진과 후퇴를 알리는 악기이고, 나발은 멀리까지 소리를 내는 군대의 신호용 악기이며, 태평소도 예전에는 군영에서 연주하던 악기이다.
[놀이 도구 및 장소]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의 농악 놀이는 농악 혹은 풍물이라는 음악에 맞춰 진행된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악기가 중요하다. 농악 놀이에는 쇠[꽹과리], 징, 장구, 북, 소고가 필요하고, 일부 마을에서는 태평소나 나발 등이 등장하기도 한다. 농악 놀이는 과거 모내기나 김매기 등을 할 때 행해지는 경우가 많아 두레기라 불리는 농기(農旗)와 영기(令旗), 아울러 용을 그려 넣은 용기(龍旗)는 물론 복색(服色)도 필요하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의 농악 놀이는 과거에는 논이나 들에서 많이 행해졌으나 오늘날에는 특별한 무대나 정규 공연장에서 축소된 형태로 진행된다.
[놀이 방법]
농악 놀이는 많은 변화가 있었던 놀이 중 하나이다. 농업을 토대로 한 전통 시대와 그렇지 않은 현대의 농악 놀이가 차이가 많다. 전통 시대에는 마을 단위로 행해지는 공동의 노동 과정에서 각자 맡은 역할에 따라 놀이가 진행되었다면 오늘날의 경우에는 농악 놀이 패가 이 놀이를 중심적으로 진행한다. 따라서 현재의 농악 놀이는 이들 놀이패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추거나 다룰 줄 아는 악기를 놀이 과정에서 직접 쳐보는 정도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오늘날의 농악 놀이는 전통 시대에 비해 수동적이라 할 수 있다.
[현황]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행해지는 농악 놀이는 다른 지역에서도 볼 수 있는 우리나라의 보편적인 놀이 문화라 할 수 있다. 오늘날 농악 놀이는 제의성(祭儀性)이 많이 약화되고 놀이성만이 남아 있어 주로 문화 체험 공간이나 특별한 행사에서나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