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시월 고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701683
한자 十月告祀
이칭/별칭 상달 고사,가을 고사,안택 고사,성주 고사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지역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집필자 한만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의례|세시 풍속
의례시기/일시 음력 10월

[정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음력 10월에 날을 가려 집안의 안녕을 위해 가신(家神)들에게 올리는 고사(告祀).

[개설]

시월 고사(十月告祀) 는 상달 고사 또는 가을 고사, 성주 고사라고도 한다. 시월 고사는 음력 시월 중에 손 없는 날을 택일(擇日)하여 시루떡을 쪄서 햇곡식과 과일로 성주신을 비롯한 가신(家神)에게 고사를 지내는 것이다. 시월 고사를 드리는 성주신은 집안의 평안을 관장하는 신으로 가신 중에서 가장 중요한 신으로 인식하였다. 시월 고사는 보통은 집안의 주부가 제주(祭主)가 되어 주관하였으며, 경우에 따라서 무당을 불러 무당이 집안의 터주를 위로하기 위하여 하는 굿인 안택굿[安宅굿]을 하기도 하였다.

[연원 및 변천]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10월경에 제천 행사(祭天行事)를 거행하였다. 고구려의 동맹(東盟)이나 예의 무천(舞天), 삼한의 제천(祭天)은 모두 10월에 거행되었는데, 이로 보아 농사를 끝내고 하늘에 추수 감사를 하는 의식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러한 행사들은 국가에서 주관하였기 때문에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시월 고사와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시월 고사 역시 성주신에게 의례를 올린다는 점에서는 같은 의미의 천신 의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 순조 때의 학자 홍석모(洪錫謨)가 지은 민속 해설서인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10월에 “집집마다 무당을 불러다가 성주신[成造神]을 맞이하여 떡과 과일을 차려놓고 집안이 편안하기를 기원하였다.”라는 내용이 있다. 또 1819년(순조 19)에 김매순(金邁淳)이 펴낸 세시 풍속에 관한 책인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는 “인가에서 10월 말날[午日]에 떡을 쪄서 터주 신에게 고사를 올리고 집안사람들을 불러 같이 먹는데, 이때 하는 떡을 마일병(馬日餠)이라고 한다. 무일(戊日)을 제일로 치고 임일(壬日)이나 경일(庚日)을 그 다음으로 여긴다. 오직 병일(丙日)은 피한다.”라는 내용이 있다. 이와 같은 내용으로 볼 때, 조선 시대에도 10월이면 집집마다 고사를 지내는 풍속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절차]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는 음력 시월상달에 손 없는 날을 택일하여 처음 수확한 쌀로 시루떡을 쪄서 햇곡식과 과일로 성주신에게 고사를 지냈다. 부인들에 의해 고사가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부잣집이나 정성이 깊은 집에서는 무당을 불러 안택굿을 하기도 하였다. 안택은 집안에 아픈 사람이나 안 좋은 일이 있으면 하는 굿이지만 집안의 평안을 위해 행해지기도 했으며, 무당이 맡아서 성주신, 터주신, 조상신, 그리고 부엌을 맡는다는 신인 조왕(竈王) 등 집안의 가신들에게도 정성을 드렸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 주민 김무웅[남, 72세]에 의하면 이 지역에서는 가을에 집집마다 고사를 지내고, 복을 나누기 위해 고사떡을 이웃들과 나누어 먹었다고 한다. 시월 고사 이후에는 집집마다 추렴을 하여 문학산 산신을 모신 안관당(安官堂)에서 도당제를 지냈으나, 미군 부대가 들어와 안관당이 사라진 후에는 군부대 내에서 제를 올리기도 했었다고 한다.

또한 문학산 일대에서는 도가(道家) 경문(經文) 중 하나인 옥추경(玉樞經)을 외우고 굿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시월 고사에서 행하는 안택굿을 해도 일이 잘 풀리지 않을 경우, 남자 무당인 박수를 불러 옥추경을 외우게 하였다고 하며, 유명한 무당을 데려와 굿을 하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구경을 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근래에는 공개적인 무속적 민간 신앙은 대부분 사라졌으며, 집안에서 행하던 고사도 점차 사라져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월 고사 풍속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