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05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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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瑜重 |
영어공식명칭 | Ahn Yu-jung |
이칭/별칭 | 국서(國瑞),만포(晩浦)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현라 |
[정의]
조선 후기 경상남도 밀양 출신의 학자.
[가계]
안유중(安瑜重)[1802~1868]의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국서(國瑞), 호는 만포(晩浦)이다. 1802년 경상남도 밀양에서 태어났다. 증조할아버지는 남고(南皐) 안명적(安明迪)이고, 할아버지는 안인제(安仁濟)이다. 안유중은 아버지 안경태(安景泰)와 어머니 송방필(宋邦弼)의 딸 수원송씨(水原宋氏) 사이에서 3남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형 안정중(安珵重)과 동생 안수중(安琇重)이 있다. 부인은 허엄(許儼)의 딸 김해허씨(金海許氏)이다. 아들은 안효완(安孝完)과 안효식(安孝寔)이다. 안유중이 밀양시 단장면 태동리로 이주하였는데, 태동리로 이주한 이들을 태동파(台洞派)라고 한다.
[활동 사항]
안유중은 일찍이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산림에서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에 전념하였다. 학문과 경륜이 높으면서도 세상에 이름이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아 벗들의 추앙을 받았다. 밀양에 사비로 학문을 가르치는 서숙(書塾)을 창건하여 생도들을 교수하고 향교에서 강학하여 사림(士林)을 깨우쳤다. 안유중은 한 고을의 스승이라고 불리었다.
안유중은 우애가 두터워 맏형 성재공(省齋公) 안정중의 묘 아래에 집을 지어 ‘단연(壇然)’이라 편액하여 수학과 수도에 전념하였다. 밀양시 부북면 전사포리에 있는 안인(安忍)이 지은 모렴당(慕濂堂)을 중수하여 기문과 상량문을 지었고 문집 3권을 간행하였다. 성재(性齋) 허전(許傳)이 서문을 짓고, 만구(晩求) 이종기(李鍾杞)가 발문을 쓰고, 만파(晩坡) 손종태(孫鍾泰)가 행장을 썼다. 문장과 학문을 강론하며 김봉희(金鳳喜), 이휘영(李徽永) 등과 교유하였다. 안유중은 1868년(고종 5) 11월 27일 사망하였다.
안유중의 유고로 『만포집(晩浦集)』이 있다. 『만포집(晩浦集)』은 6권 3책이며, 1885년(고종 22) 안유중의 손자 안희원(安禧遠)과 족손(族孫) 안호원(安鎬遠)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허전(許傳)의 서문과 권말에 이재영(李在永), 이종기(李種杞), 안희원 등의 발문이 있다.
[묘소]
안유중의 묘소는 경상남도 양산시 옛 황산(黃山)에 있다고 전한다. 참판(參判) 긍재(肯齋) 이돈우(李敦雨)가 묘갈명을 지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