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05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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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而杜 |
영어공식명칭 | Lee Yi-doo |
이칭/별칭 | 사직(士直),남회당(覽懷堂)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은미 |
출생 시기/일시 | 1625년 - 이이두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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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703년 - 이이두 사망 |
출생지 | 내진리 -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내진리 |
거주|이주지 | 내진리 -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내진리 |
사당|배향지 | 팔문각 - 경상남도 밀양시 초동면 검암리 곡강마을 |
성격 | 유학자|효자 |
성별 | 남성 |
본관 | 벽진(碧珍) |
[정의]
조선 후기 밀양 출신의 유학자이자 효자.
[가계]
이이두(李而杜)[1625~1703]의 본관은 벽진(碧珍)이고, 자는 사직(士直), 호는 남회당(覽懷堂)이다. 성산군(星山君) 이식(李軾)의 5세손이다. 이이두의 형은 죽파(竹坡) 이이정(李而楨)[1619~1679]이다. 아들 청옹(聽翁) 이명기(李命夔)[1653~1716]가 급제하였다. 1625년 지금의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내진리에서 태어났다.
[활동 사항]
이이두는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의 학통을 계승하여 퇴계의 학통이 밀양 사람들에게 주류를 이루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표은(瓢隱) 김시온(金是榲)[1598~1669], 학사(鶴沙) 김응조(金應祖)[1587~1667], 간송(澗松) 조임도(趙任道)[1585~1664] 등과 교유하였다. 만년에는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1627~1704]과 의리를 강론하기도 하였다.
어려서부터 『소학(小學)』을 공부하였고 효에 대한 실천이 독실하였다 하여 이이두가 살았던 곳은 효우촌(孝友村)이라 불린다. 부모 계신 집 곁에 당을 지어 ‘오우당(五友堂)’ 편액을 걸고 여러 형제들과 밤낮으로 거처하며 부모를 봉양하였고, 부모가 돌아가신 후에도 스스로 노령이 되었을 때까지 효를 다하였다. 만년에는 작은 오두막을 짓고는 오우당 시절에 대한 감회를 적은 글을 벽에 걸었는데, 이를 본 창설재(蒼雪齋) 권두경(權斗經)[1654~1725]이 오두막 집을 남회당이라 하여 ‘남회당’을 호로 삼았다고 한다. 시를 즐겨 썼으며, 여든 가까운 고령에도 공부가 치밀하고 견고하였다고 행장에 전한다. 이이두는 1703년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이이두의 저서로 『남회당문집(覽懷堂文集)』 4권 2책이 있다.
[상훈과 추모]
이이두는 경상남도 밀양시 초동면 검암리 곡강마을에 있는 벽진이씨 팔문각(八門閣)에 위패가 모셔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