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2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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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覽懷堂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내진1길 31[내진리 206]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하강진 |
건립 시기/일시 | 17세기 - 남회당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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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시기/일시 | 2000년대 - 남회당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내진리에서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내진리 206으로 이건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898년 - 남회당 중건 |
현 소재지 | 남회당 -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내진1길 31[내진리 206] |
원소재지 | 남회당 -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내진리 |
성격 | 재실 |
양식 | 팔작지붕 |
정면 칸수 | 5칸 |
측면 칸수 | 3칸 |
소유자 | 벽진이씨 밀양종중 |
관리자 | 벽진이씨 밀양종중 |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내진리에 있는 벽진이씨 선조를 기리기 위한 조선 후기 재실.
[개설]
남회당(覽懷堂)은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내진리에 입촌한 벽진이씨(碧珍李氏) 이덕창(李德昌)[1503~1575]의 고손자 이이두(李而杜)[1625~1703]를 기리기 위하여 향의(鄕議)로 건립한 재실이다.
밀양시 부북면 수동[현 대항]에 정착한 사람은 산화(山花) 이견간(李堅幹)[1259~1330]의 7세손이자 중종반정의 정국공신으로 성산군에 책봉된 이식(李軾)이다. 아들 이덕창이 내진리에 정착하였고, 증손자 사빈 이계윤[1583~1659]에 이르러 가문이 대대적으로 번창하였다. 이계윤은 ‘이씨오학(李氏五鶴)’이라 불린 다섯 아들을 두었는데, 이이두가 막내아들이다. 다섯 형제는 효우가 독실하여 오우당(五友堂)에서 거처하며 부모를 지극히 봉양하였다. 부모가 잇달아 사망하자 6년간 여묘를 살았으며, 형제 중 홀로 남자 과거를 단념하고 80세가 되도록 조상을 봉사(奉祀)하며 효성을 다하였다. 이이두의 당호 ‘남회(覽懷)’는 창설재(蒼雪齋) 권두경(權斗經)[1654~1725]이 지어 주었고, 일암(一庵) 신몽삼(辛夢參)[1648~1711]이 의미를 밝혔다고 한다.
세월이 오래되어 재실이 무너지자 1898년 마을 유림의 의론을 모아 중건하였다. 경연참찬관 향산(響山) 이만도(李晩燾)[1842~1910]의 「남회당 중건기」가 남아 있다. 정문 이름은 ‘청수문(淸修門)’이다. 1898년 남회당을 중건할 때 목판본 『남회당집』을 간행하였다.
[위치]
남회당은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내진리 206번지에 있다. 내진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마을 전체와 어우러진 연못이 조성되어 있고, 연못에 인접한 마을 북쪽 길가에 건물이 있다. 동쪽 곁에 청옹정이 있어 내진에 세거한 벽진이씨의 선조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남회당이 있는 마을의 뒷산 의봉산에 밀양 용안서원이 있다.
[변천]
남회당은 17세기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내진리 밀양 용안서원 부근에 건립되었다. 1898년 중건하였으며, 2000년대 마을 한가운데인 밀양시 무안면 내진리 206으로 이건하였다.
[형태]
남회당은 팔작지붕의 목조 건물 1동이고,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황]
남회당은 후손들의 집거하는 마을 한가운데 있고 관리하는 유사가 있어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하다.
[의의와 평가]
남회당을 통하여 벽진이씨의 밀양시 무안면 내진리 입촌 내력과 밀양 지역 내 분포지를 파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