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우회 밀양지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700625
한자 槿友會 密陽支會
이칭/별칭 밀양근우회,밀양근우지회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선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28년 4월 28일연표보기 - 근우회 밀양지회 설립
최초 설립지 신간회 밀양지회 회관 - 경상남도 밀양시
성격 항일단체
설립자 고원섭|윤치정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밀양 지역에 있었던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한 여성 단체 근우회 소속 지회.

[개설]

근우회 밀양지회는 1928년 4월 3일 밀양여자청년회의 주도로 발기인대회를 개최하고, 4월 28일 신간회 밀양지회 회관에서 창립되었다. 활동 부서로 서무부, 교양부, 선전조직부, 조사부, 재무부를 두었다. 일상적인 사무인 회원 관리와 선전 및 재정 관련 업무 이외에, 봉건적인 구습과 미신을 타파하기 위한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활동을 중심 사업으로 삼았고, 다른 사회운동단체와의 연대 활동 등을 전개하였다.

밀양여자청년회가 운영하던 밀양여자야학을 맡아 운영하게 되면서, 밀양 지역 여성운동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1929년 5월 경상북도의 한재 주민을 돕기 위한 판매 사업과 모금 활동과 같은 대외 활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설립 목적]

근우회 밀양지회는 1927년 5월 27일 창립된 근우회의 지회로 창립되었다. 근우회의 설립 목적은 여성의 단결과 지위 향상을 통하여, 봉건적 굴레로부터 여성을 해방시키고 일제 침략으로부터 조선을 독립시키는 새로운 여성운동을 전개하는 것이었다.

[변천]

1928년 4월 3일 밀양여자청년회는 연계소에서 근우회 밀양지회 발기인대회를 개최했다.

1928년 4월 28일 회원 7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신간회 밀양지회 회관에서 근우회 밀양지회가 창립되었다. 창립대회에서는 임시집행부를 선출하고 규약을 통과시킨 후, 본부 대의원과 건의안 작성위원을 선정하고 예산안을 통과시켰으며, 토의 사항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였다. 임시집행부는 1928년 4월 29일 상무집행위원으로 윤치정, 김경악, 고원섭, 이영복, 강농주, 신순이를 선정하였다.

1920년 2월 결성되어 그동안 밀양 여성운동의 중추였던 밀양여자청년회가 1928년 9월 8일 해체되었는데, 이로써 근우회 밀양지회가 밀양 지역 여성운동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1929년 3월 10일 제2회 정기대회가 신간회 밀양지회 회관에서 개최되었고, 1930년 3월 28일 제3회 정기대회가 밀양 내이동 서한공회당에서 개최되었으며, 1931년 3월 26일 제4회 정기대회가 내이동 서한공회당에서 개최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근우회 밀양지회는 근우회 중앙본부, 대부분의 지회와 같이 활동부서로 서무부, 교양부, 선전조직부, 조사부, 재무부를 두었다.

근우회 밀양지회의 주요 사업과 업무는 매년 정기총회에 상정된 토의 사항을 통하여 확인된다. 주요 사업은 봉건적 인습과 미신 등 구습 타파와 인신매매 철폐 활동, 회원과 농촌 부녀를 대상으로 하는 가정 강좌와 교양 강좌 등 교육 활동, 밀양사회운동자간친회 개최와 밀양청소년운동 격려 및 도 지회연합회 결성과 경남기자대회 참여 등 우의단체 제휴 관련 활동 등이었다. 주요 업무는 회원 관리, 회비와 본부 회관 건축비 부담 등 재정 관련 문제, 선전 조직 업무, 규약 수정 등이었다. 1928년 9월 밀양여자청년회가 해체되면서, 그간 밀양여자청년회가 운영하던 밀양여자야학은 근우회 밀양지회가 맡게 되었다. 1929년 5월에는 한재를 입은 경북 주민을 돕기 위한 판매 사업과 모금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현황]

1931년 5월 15일 신간회 해체 후 근우회의 활동이 위축되면서, 밀양지회의 활동도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의의와 평가]

신간회와 근우회의 창립이라는 민족해방운동의 흐름에 부응하여 신속하게 조직을 정비하고, 지역 여성운동의 거점이었던 밀양여성청년회를 계승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밀양 지역 여성 항일운동을 한 단계 발전시키는 데 기여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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