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10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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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景先齋 |
영어공식명칭 | Gyeongsun-jae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상동면 고답로 54[고정리 1116-1]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신재식 |
건립 시기/일시 | 1915년 - 경선재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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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955년 - 경선재 중건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15년 - 「경선재기」 저술 |
현 소재지 | 경선재 - 경상남도 밀양시 상동면 고답로 54[고정리 1116-1] |
원소재지 | 경선재 - 경상남도 밀양시 상동면 고답로 54[고정리 1116-1] |
성격 | 재사 |
양식 | 팔작지붕 |
정면 칸수 | 4칸 |
소유자 | 달성서씨 문중 |
관리자 | 달성서씨 문중 |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 상동면 고정리에 있는 달성서씨 입촌조 서만백을 기리는 일제강점기 재사.
[개설]
경선재(景先齋)는 경상남도 밀양시 상동면 고정리의 달성서씨(達城徐氏) 입촌조인 서만백(徐萬伯)[1582~1645]의 시거(始居)를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한 재사(齋舍)이다.
서만백은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 당시 대구광역시에서 경상북도 청송군으로 피난하였고, 이어 밀양시 상동면 고정리로 이주하였다. 서만백은 상동면 고정리에 거처한 후 산림에서 유유자적 지내며 부귀영화에 뜻을 두지 않고, 유학을 숭상하였다고 한다. 그 후 상동면 고정리는 밀양 달성서씨의 세거지가 되었다.
[위치]
경선재는 밀양시 상동면 고정리 고답마을 표지석 인근에 있다.
[변천]
경선재는 1915년 서만백의 11세손인 서정수(徐鼎洙), 서희수(徐希洙) 등이 서만백을 추모하기 위하여 달성서씨 문중과 합의하여 창건하였다. 1955년 서만백의 12세손인 서정인(徐正仁), 서정련(徐正煉), 서정혁(徐正赫) 등이 논의하여 경선재를 중건하였다. 창건 직후에 김유(金楺)가 지은 「경선재기(景先齋記)」가 남아 있다.
[형태]
경선재는 정면 4칸의 팔작지붕 구조이다. 좌측 2칸과 우측 끝 1칸이 방이고, 그 사이가 대청마루이다. 각 방 앞에 마루가 있다. 대청마루 앞에 계단이 있으며, 상부 정면에 ‘경선재(景先齋)’라는 대형 편액이 걸려 있고, 상부의 좌측과 우측에 각각 ‘누대소명(樓臺昭明)’·‘경선재(景先齋)’ 등의 소형 편액이 걸려 있다.
[현황]
경선재는 현재 달성서씨 문중에서 관리 및 보호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경선재는 경선재는 밀양시 상동면 고정리 달성서씨 집성촌의 집회, 제례 등의 장소로 활용되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를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