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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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春福齋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교동 산74-6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신재식 |
건립 시기/일시 | 1939년 - 춘복재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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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39년 - 손지현 「보본재기」 저술 |
현 소재지 | 춘복재 - 경상남도 밀양시 교동 산74-6 |
성격 | 재사 |
양식 | 팔작지붕 |
정면 칸수 | 5칸 |
측면 칸수 | 1칸 |
소유자 | 밀성손씨 문중 |
관리자 | 밀성손씨 문중 |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 교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재사.
[개설]
춘복재(春福齋)는 손긍훈(孫兢訓)의 소상각(塑像閣)인 현충사(顯忠祠)의 치제소(致祭所)로, 손긍훈의 후손들이 1939년에 당을 ‘보본(報本)’ 재(齋)를 ‘춘복(春福)’이라 편액한 곳이다. 1939년 창건의 전말을 기록한 손지현(孫之鉉)의 「보본재기(報本齋記)」에 의하면 “가운데를 당(堂)으로 하고 그 좌우를 실(室)로 하여 ‘보본’이라는 편액을 걸어서 자신들의 추모와 보답의 뜻을 나타내었다.”라고 하였다. 건립 당시 손종채(孫鍾彩)·손재평(孫在平) 등이 건축비를 조달하고, 손영희(孫永熙)·손진한(孫振翰)·손재평(孫在平)이 건축 사업의 시말을 전담하고, 손재석(孫再錫)·손진룡(孫振龍)·손윤현(孫允鉉)·손희진(孫熙振)이 공사를 감독하였다.
밀양손씨는 시조 손순(孫順)의 손자인 손익감(孫翼減)이 응천군(凝川君)에 봉해지면서 밀양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손긍훈은 고려 태조를 도와 후삼국 통일에 공을 세웠다. 이에 보국숭록대부(輔國崇錄大夫)에 오르고 광리군(廣理君)에 봉해져 가세(家勢)를 크게 일으켰다.
[위치]
춘복재는 경상남도 밀양시 교동에 있다.
[형태]
춘복재는 정면 5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 구조이다. 우측 1칸과 좌측 2칸이 방이고, 중간 2칸이 대청마루로 되어 있다. 대청마루 상부에 ‘춘복재’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현황]
[의의와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