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14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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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嶺南樓十景詩 |
영어공식명칭 | Yeongnamnu-sipkyeongsi |
이칭/별칭 | 「밀양십경시」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중앙로 324[내일동 40]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황병익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420년 - 서거정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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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488년 - 서거정 사망 |
배경 지역 | 영남루 - 경상남도 밀양시 중앙로 324[내일동 40] |
성격 | 한시 |
작가 | 서거정 |
[정의]
조선 전기의 학자 서거정이 밀양 영남루의 주변 경치를 주제로 지은 한시.
[개설]
조선 전기 문인인 서거정(徐居正)[1420~1488]은 지금의 경상남도 밀양시 내일동 40에 있는 밀양 영남루(密陽嶺南樓)[국가지정문화재 보물]에 올라 영남루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 열 곳을 노래한 바 있는데, 이 열 편의 한시를 「영남루십경시(嶺南樓十景詩)」라 하며 「밀양십경시」라고도 일컫는다. 「영남루십경시」는 서거정의 문집인 『사가시집보유(四佳詩集補遺)』에 수록되어 있다.
조선시대 밀양도호부 객사에 속하던 밀양 영남루는 원래는 고려 후기인 1365년(공민왕 14)에 밀양군수 김주(金湊)가 영남사라는 절터에 새로 지은 누(樓)이다. 손님을 맞거나 휴식을 취할 때 쓰이던 장소인데, 절 이름을 빌어 영남루라 불렀다. 1459년(세조 5)에 밀양부사 강숙경(姜叔卿)이 영남루 본루를 중수하면서 규모를 확대하였고 그 뒤 여러 차례 고치고 전쟁으로 불탄 것을 다시 세웠는데, 지금 건물은 조선 1844년(헌종 10) 밀양부사 이인재(李寅在)가 새로 지었다. 이러한 밀양 영남루와 주변의 밀양강 절벽 등 아름다운 경관을 시로써 칭송한 것이 서거정의 「영남루십경시」이다.
[구성]
「영남루십경시」는 밀양 영남루에서 굽어보고 내려다볼 수 있는 모든 경치를 담고 있다.
[내용]
「영남루십경시」에서 꼽은 제1경은 「우령한운(牛嶺閑雲)」, 곧 우령의 한가로운 구름이다. 우령은 우령산(牛齡山)의 고개들을 일컫는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령이 멀리 겹겹 청강석을 꽂아 논 듯하여라[牛嶺迢迢揷層碧]/ 영남의 아름다운 경치가 천하에 으뜸일세[嶺南佳麗天下獨]/ 화려한 누각 용마루는 금오 머리에 우뚝한데[瓊樓畫棟金鼇頭]/ 한가로운 구름 얽히어 마냥 오색이 찬란하네[閑雲繚繞長五色]/ 구름을 무심한 물건이라 누가 말하였던고[誰言雲是無心物]/ 생령을 윤택하게 하는 술법이 원래 있는걸[澤潤生靈元有術]/ 어찌 공연히 태양과 하늘을 가리기만 하랴[何曾蔽日漫遮天]/ 큰 가뭄엔 응당 불일간에 장맛비를 내리리[大旱成霖應不日].”
제2경 「삽포어등(鈒浦漁燈)」은 삽포의 고기잡이 등불, 제3경인 「율도추연(栗島秋烟)」은 율도의 가을 연기, 제4경인 「영봉초욱(瑩峯初旭)」은 영봉의 아침 해, 제5경인 「나현적설(羅峴積雪)」은 나현에 쌓인 눈, 제6경인 「서교수계(西郊修禊)」는 서교의 수계[삼짇날 물가에 모여 술 마시고 노는 일], 제7경인 「남포송객(南浦送客)」은 남포(南浦)에서 손님을 보내는 풍경, 제8경 「마산비우(馬山飛雨)」는 마산(馬山)에 날리는 소낙비, 제9경 「응천어정(凝川漁艇)」은 응천(凝川)의 고기잡이 배를 그리고 있다.
마지막 제10경은 「용벽춘화(龍壁春花)」, 곧 용두산(龍頭山) 절벽의 봄꽃을 그리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용두산 꼭대기에 봄이 한창 아름다워라[龍頭山上春正好]/ 산 가득 철쭉꽃에 봄기운이 한창일세[躑躅滿山春意鬧]/ 하룻밤 내린 좋은 비가 흡사 진국술 같아[一夜好雨如酒醇]/ 온 산 꽃이 만발하여 타는 듯이 붉은데[花開已遍紅似燒]/ 그 뉘 집 젊은이는 금장니를 장식하고[誰家少年錦障泥]/ 술병 차고 동서남북을 쏘다니며 노는고[携壺遊賞東復西]/ 날 저물어 돌아오니 춘색은 얼굴 가득하고[日暮歸來春滿面]/ 무수히 날린 꽃잎은 말발굽에 엉기었네[無數飛花襯馬蹄].”
[의의와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