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0009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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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尹昌世先生墓所一圓 |
영어의미역 | Grave Area of Yun Changs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 산1-3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김은지 |
성격 | 묘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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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일시 | 조선시대 |
관련인물 | 윤창세|해평윤씨|윤동도|유연 |
소유지 주소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 산1-3 |
문화재 지정번호 | 논산시 향토유적 제10호 |
문화재 지정일 | 1922년 10월 28일 |
[정의]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시대 파평윤씨 묘역과 묘비.
[개설]
윤창세 선생 묘소 일원은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싸우다가 진중에서 전사하여 훗날 이조참판으로 추증된 윤창세의 묘소가 제일 먼저 자리 잡은 곳으로,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와우형(臥牛形)으로 불리는 곳이다. 이곳에 묘소가 마련된 이후 윤창세의 자손들은 노종 5방파로 발전하였다. 묘역에는 노종 5방파 직계 선조들의 묘소와 6기의 신도비가 건립되어 있으며, 이 가운데는 타성의 묘소도 자리하고 있는데, 이는 외손봉사의 흔적이다.
[형태]
윤창세의 묘비는 파평윤씨 선영의 하단에 서향으로 세워져 있다. 묘비명은 김유가 찬하고, 윤순거가 서했으며, 김광현이 전한 것이다. 비는 1634년에 건립된 것으로 높이는 212㎝, 폭 80㎝, 두께 26.5㎝이다. 대좌는 방형으로 윗면에 복련을 조각하였으며, 비신을 받기 위한 홈이 마련되었다.
비신은 대리석재로 앞면에만 음서가 되어 있고, 비명은 ‘증이조참판윤공묘비명(贈吏曹參判尹公墓碑銘)’이라 쓰여 있는 전액과 함께 일대기가 적혀 있다. 이 비신은 대좌와 이수의 홈에 맞추어져 있다. 이수는 운룡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두 마리의 용이 구름을 헤치고 하나의 여의주를 차지하려는 모습이다. 이수의 크기는 비신의 폭보다는 넓으며 대좌의 폭보다는 좁은 편이다. 현재 철책으로 둘러 쳐진 채 방치되어 있다.
해평윤씨 묘소의 묘비는 지붕[옥개]형으로 1796년에 건립되었다. 묘비의 앞면에는 ‘유명조선세자시강원필선증이조판서시충헌윤공휘부지배증정부인해평윤씨묘(有明朝鮮世子侍講院弼善贈吏曹判書諡忠憲尹公諱祔之配贈貞夫人海平尹氏墓)’라 각자되어 있다. 비문은 조윤형이 찬하고 전을 썼으며, 윤광안이 서하였다. 비신의 규모는 높이 115㎝, 너비 47㎝, 두께 19㎝이다.
윤동도 묘소의 묘비는 1775년(영조 51)에 건립된 것으로 지붕형이다. 묘비의 앞면에 ‘영의정시유당윤공동도묘(領議政諡柳塘尹公東度墓)’라 각자되어 있다. 비문은 윤광소가 찬하고, 윤동휴가 서하였다. 비신의 규모는 높이 160.5㎝, 너비 61㎝, 두께 31㎝이다. 유연의 묘소는 묘비 앞면에 ‘통정대부류공지묘부인남양홍씨부(通政大夫柳公之墓夫人南陽洪氏祔)’라 각자되어 있다. 비석의 규모는 높이 140㎝, 폭 63.5㎝, 두께 15㎝이다.
[의의와 평가]
윤창세선생 묘소 일원은 1992년 10월 28일에 논산시 향토유적 제10호로 지정되었다. 노성 지역의 파평윤씨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서 가치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