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0013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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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尹昌世 |
영어음역 | Yun Changse |
이칭/별칭 | 흥백(興伯)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득윤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이연숙 |
성격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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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득윤리 |
성별 | 남 |
생년 | 1543년 |
몰년 | 1593년 |
본관 | 파평 |
[정의]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흥백(興伯). 고려 태사 윤신달(尹莘達)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대사성 윤탁(尹倬)이고, 아버지는 윤돈(尹暾)이다. 윤창세는 아들 5형제를 두었는데 첫째는 윤수(尹燧)로 설봉공파를 이루었고, 둘째는 윤황(尹煌)으로 문정공파, 셋째는 윤전(尹烇)으로 충헌공파, 넷째는 윤흡으로 서윤공파, 다섯째는 윤희(尹熺)로 전부공파를 이루었다. 5형제 가운데 윤수와 윤황, 윤전은 문과에 급제하였다. 5형제의 슬하에서 손자 21명, 증손자 51명을 두는 등 크게 번창하여 윤창세의 5형제 계파를 ‘오방파’라고 부른다.
[활동사항]
윤창세는 효성이 지극하여 처가와 외가의 대소사는 물론 흉재나 환란을 당한 마을 사람들에게도 온정을 베풀어 칭송을 한 몸에 받았다. 성품이 순후하고 언행이 방정하며 효행이 지극하기로 소문이 났다. 어머니가 병에 걸려 수박이 먹고 싶다고 하자 때가 아닌데도 열심히 수박을 구하다가 끝내 얻지 못하였으므로 죽을 때까지 수박을 입에 대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아버지 병환에 거북이 고기가 좋다는 의원의 말을 듣고 한겨울에 들에 나가 지성으로 구하였더니 홀연히 거북이가 얼음 위로 나타났다는 일화가 전한다. 그 후 아버지의 병세가 악화되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여 소생시켰으나 이윽고 죽자 3년간 시묘를 하였다. 이에 그의 지극한 효성과 이웃을 보살핀 마음씨와 행적으로 인하여 자손들은 그를 효렴공(孝廉公)이라 불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노성으로 급히 귀향하여 팔자기를 세우고 의병 수천 명을 모집하므로, 팔자군(八字軍)으로 알려졌다. 진중에서 유행병에 걸린 동료를 구하다가 전염되어 악화되어, 1593년 51세를 일기로 생을 마쳤다.
[묘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