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0012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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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完 |
영어음역 | Gim Wan |
이칭/별칭 | 학성군(鶴城君),양무(襄武)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고수연 |
[정의]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김해(金海). 아버지는 이성현감(利城縣監) 김극조(金克祧)이다.
[활동사항]
김완은 1592년 임진왜란 때 용맹이 알려져 전라도 병마절도사 이복남(李福男)의 휘하에 들어갔다. 같은 해 여름 무과에 급제하여 경상도방어사 고언백(高彦伯)의 막하에 있다가 전라도병마절도사 이광악(李光岳)을 따라 남원에 갔다. 이때 아버지 김극조를 무고하여 죽게 한 한덕수(韓德修)가 병력을 점검하여 찔러 죽이려다가 실패하였다. 1601년(선조 34) 소파아권관겸단련사(小坡兒權管兼團練使)가 되었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원수(元帥) 장만(張晚)의 선봉장으로, 안현(鞍峴)에서 공을 세웠다. 이에 진무공신(振武功臣) 3등에 책록되었고 학성군(鶴城君)에 봉해졌다. 이어 구성부사에 제수되었으나 병으로 사직하였다. 그 뒤 다시 복관되어 부총관을 거쳐 전라우수사가 되었으나 모략으로 일시 투옥되었다. 후에 곧 풀려나 1634년에는 훈련원 도정, 황해도 병사를 지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양무(襄武)이며, 논산시 노성면 장구리에 영정 사본을 모신 양무공 영당(襄武公靈堂)이 있다. 사후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