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0014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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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陽村面仁川靑年會 |
영어의미역 | Yangchon-myeon Incheon Youth Association |
분야 |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김형목 |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논산 양촌지역에 있었던 청년 계몽 운동 단체.
[설립목적]
양촌면 인천청년회는 주민 계몽과 회원 상호간 지식계발을 통한 새로운 시대변화에 부응하는 생활수준을 향상시키고자 설립되었다.
[변천]
1921년 설립된 양촌면 인천청년회의 초기 임원진은 회장 이재호(李在鎬), 부회장 강영식(姜永植), 총무 서기훈(徐琦勳) 등이었으며, 회원은 64명으로 각 동리 유망한 청장년을 망라하였다. 1926년 개선된 임원은 소병직(蘇秉直)·강인식(姜仁植)·이길호(李吉鎬) 등 8명이었으나, 1920년대 후반 일제 탄압으로 점차 규모와 활동이 축소되었다.
그러나 1927년 혁신총회를 계기로 회원 증가는 물론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혁신총회 직후 축구대회임원진은 회장 강영식, 서기 김혜식(金惠植), 회계 황하숙(黃河淑), 심판 이길호 등이었다. 이후 회원들은 논산노동조합 창립이나 소작쟁의 등 사회운동을 주도하다가 구속되었는데, 집행위원 권영민(權寧珉)의 구속은 이와 무관하지 않았다.
1926년 양촌면 인천청년회 정기총회에서 결의된 사항으로 “월연금(月捐金)은 2회로 나누어 징수할 것, 지주로서 소작인에 대하여 소작권을 멋대로 이동하는 자와 소작료를 과다하게 징수하여 생활의 불안을 끼치는 자에게 양촌면 인천청년회에서 경고문을 발송한 이후로 가혹한 일이 없도록 할 것, 순종의 인산일에 회원 일동이 회합하여 애도의 뜻을 표할 것, 전북 민중운동사건으로 복역 중인 장일환(張日煥) 가족에게 본회에서 대표를 보내어 위문할 것.” 등이 있었다.
일제는 양촌면 인천청년회의 활동을 탄압하기 위하여 회관을 수색하는 동시에 문서를 압수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양촌면 인천청년회는 형평사의 신분제도 철폐운동에 동조하여 전조선형평대회에 참여하는 등 대외 활동을 지속하였다.
[주요사업과 업무]
양촌면 인천청년회는 1920년대 초반 당시 논산군내 각지 청년단체와 연계하였으며, 논산학우회 순회강연단을 초빙하는 등 주민들 현실 인식을 심화시켰다. 창립 초기 매주 1회씩 토론회나 강연회를 개최하였으며, 양촌면 유지들은 경제적인 지원은 물론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학령을 초과한 아동과 무산계급 아동을 위한 야학도 운영하였으며, 교과목은 서한문·산술·일어 등으로 교사는 양촌보통학교장 범사무(汎士茂)와 훈도 정도상(鄭道相) 등이었다. 이와 함께 회원간의 친목도모와 주민들과 유대 강화를 위하여 축구대회를 개최하였다.
[의의와 평가]
1920년대 당시 충청남도 논산군 양촌면 일대 문화계몽운동은 양촌면 인천청년회의 주도로 이루어지는 등 주민들이 민지계발과 사회운동에 참여하는 계기를 제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