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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01506
한자 大芚山共匪討伐作戰
영어의미역 Sweep Operations Against Communist Guerrillas in Daedunsan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허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연도/일시 1950년 9월연표보기
종결연도/일시 1955년 1월연표보기
발생(시작)장소 대둔산
관련인물/단체 남충렬|이현상|김경진|국군 제9사단|대둔산지구 전투경찰대

[정의]

1950년대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대둔산의 좌익무장유격대에 대해 이루어진 국군과 경찰의 진압 작전.

[개설]

6·25 전쟁 때 좌익무장유격대가 충청남도 논산의 대둔산을 근거지로 하여 좌익무장유격 활동을 벌이자 후방을 안정시키기 위해 국군과 경찰이 합동으로 전개한 진압작전이다. 1950년 11월부터 시작되었으나 휴전 이후에도 계속되어 1955년 1월까지 이어졌다.

[발단]

6·25 전쟁 중이었던 1950년 9월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북쪽으로 후퇴하지 못한 인민군과 남한 각지에서 활동하던 좌익 민주청년동맹원, 그리고 이미 활동 중에 있었던 유격대원이 함께 좌익무장유격대를 구성하여 활동하였다. 좌익무장유격대는 지리산을 비롯한 남한의 험준한 산악지대를 주요 근거지로 삼아 유격 활동을 전개하였다.

충청남도 지역의 좌익무장유격대는 조선노동당 충남도당 위원장 남충렬의 주도하에 대둔산을 중심으로 사령부를 구성하고 그 예하에 백두산부대, 대덕부대, 대전부대, 함둔산부대, 가야산 부대, 압록강부대, 청천강부대와 사령부 직속의 공병부대 및 통신정찰중대를 편성하여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에 국군과 경찰이 합동으로 이들에 대한 진압작전을 전개하기에 이르렀다.

[경과]

1950년 11월 국군 제9사단을 중심으로 대둔산을 근거지로 활동하던 좌익무장유격대에 대한 진압작전이 시작되었다. 제9사단의 예하 부대인 28연대를 주력군으로 하여 충청남도 경찰국도 경비사령부의 설치와 더불어 강경경찰서에 대둔산지구 전투경찰대를 창설하여 이에 합세하였다. 뿐만 아니라 좌익무장유격대의 활동이 극심했던 지역의 청장년들도 적극 동참하였다.

한편 좌익무장유격대는 1951년 5월 중순이 되자 6개도당회의의 결정에 의해 각 도당유격대가 사령관과 부사령관을 각각 이현상과 이영희로 하는 남부군의 지휘 아래 들어가게 되면서 제1전구(전라북도 북부와 충청남도)와 제2전구(전라북도 남부)로 개편되었다. 그리고 제1전구는 다시 충청남도 지역의 좌익무장유격대 570명을 68사단(사단장 고판수)으로, 전라북도 북부지방의 무장유격대 700명을 45사단으로 각각 개편하였다.

이렇게 개편된 좌익무장유격대는 충청남도에서는 벌곡·양촌·연산·가야곡·논산·강경·금산·공주·대전 등의 지역을 중심으로, 그리고 전라북도에서는 완주군·진안군 등의 지역을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활동하면서 경찰서를 비롯한 관공서를 습격하는 등 치안을 불안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관련 지역 주민들에도 많은 피해를 입히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의 활동은 한국전쟁이 끝난 후에도 잔존하여 지속적으로 전개되었으나 1955년 1월 2일 압록강 부대장 김종하의 생포와 더불어 완전 종료되었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진압작전도 1955년 2월에 공식적으로 종료되었다.

[결과]

1950년 11월부터 1955년 1월까지 진행된 진압작전의 결과 좌익무장유격대 대원 2천 2백여 명을 사살하고 1천여 명을 생포하였으며 그 외 다량의 무기와 탄약 및 장비 등도 노획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국군, 경찰관, 의용경찰 및 청소년 등 모두 1천 3백여 명이 희생된 것으로 나타났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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