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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02351
한자 祭禮
영어의미역 Religious Ceremonies
이칭/별칭 제식(祭式)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집필자 이영구

[정의]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조상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자 지내는 의례.

[개설]

예부터 상례(喪禮)는 어렵다고 이야기하고, 제례(祭禮)는 복잡하다고 여겨왔다. 상례는 정통의 확립과 관련하여 후계자의 선정 문제 등이 어려운 부분이라면, 제례에서는 제를 지내는 제주와 가문에 따라 내용과 절차 등이 복잡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 “남의 제사에 밤 놓아라, 대추 놓아라”라는 속담과 “가례(家禮)는 가가례(家家禮)”라는 이야기는 제례의 복잡성을 나타내는 말이다.

조선시대 주자가례의 시행과 관련하여 가장 먼저 가묘제(家廟制)에 대한 강조가 있었으며, 생활규범으로서의 예서(禮書) 가운데 가장 먼저 저술되기 시작한 것은 제례서(祭禮書)였다. 그것은 아마도 조상의 신주를 모신 가묘를 친족집단의 상징으로 삼고, 다양한 제사라는 기회를 통하여 후손들 간의 결속을 다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제례는 크게 기제(忌祭), 시향(時享), 절사(節祀)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종류]

1. 기제

기제는 사대봉사(四代奉祀)의 원칙에 따라 고조까지 기일에 지내는 제례이다. 고려 말기인 1390년에는 신분에 따른 차등을 두어 대부(大夫) 이상은 삼대(三代), 6품 이상은 이대(二代), 7품 이하 서인(庶人)은 부모에게만 제사를 지내게 하다가, 그 이듬해인 1391년부터는 6품 이상은 삼대까지 허용하는 것으로 결정되어 『경국대전』에 수록되었다. 조선 말기에 이르러는 사대봉사가 일반화되었다.

2. 시향

시향은 본래 사시제로 사중절(四中節)에 지내는 제례이다. 즉 봄에는 2월, 여름에는 5월, 가을에는 8월, 그리고 겨울에는 11월에 지내게 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소개되면서 묘에서 지내는 제사, 즉 묘제(墓祭)로 바뀌었고, 대개 봄에는 3월, 가을에는 10월을 택하여 1년에 1회 지내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논산 지역의 경우 대체로 10월 시향을 잡는 경우가 많다.

3. 절사

절사는 명절을 맞아 지내는 제사로 집안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논산 지역 안동김씨 집안의 경우 정월 상원(上元: 대보름), 3월 답청(踏靑), 4월 등석(燈夕), 6월 유두(流頭), 7월 칠석(七夕), 9월 중양(重陽), 11월 동지(冬至)에 지내도록 하고 있다. 절사 음식으로는 대보름의 약밥, 유두의 수단(水丹), 동지의 팥죽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른 가문에서도 이러한 절사들이 다양한 형태로 모셔졌을 것으로 짐작되나 대체로 일제강점기에 들어서 설과 추석과 같은 명절의 차례로 축소되었고 지금에 와서는 옛 절사의 방식을 기억하는 후손들마저 드문 형편이다.

[절차]

1. 제례 준비

1) 기구 진설

대청이나 정침(正寢)의 북쪽 벽 한가운데에 병풍을 두르고 교의(交椅)를 설치한다. 교의 앞에 제상(祭床)을 놓고 제상 앞에 향안(香案)을 놓으며, 향안 위에는 향로와 향합(香盒)을 놓고, 그 앞에는 모사(茅砂) 그릇을 놓는다. 향안 옆에는 주가(酒架)를 놓고 그 위에는 술 주전자와 강신잔반(降神盞盤)을 놓는다.

2) 제물 진설

시접(匙楪)과 잔반을 신위 앞에 놓고, 과실·포(脯)·해(醢)·소채(蔬菜) 등을 제자리에 진설한다.

3) 신위 설치

질명(質明: 먼동이 트려 할 때)에 주인 이하 모두 복장을 갖추고 사당에 나아간다. 주인이 문을 열고 들어가 분향하고 꿇어앉아 사유(事由)를 고한 뒤에 신주를 받들고 나와서 교의에 모신다. 사당이 없을 때는 지방(紙榜)을 써서 교의에 모신다.

2. 지방 서식

1) 아버지일 경우

“현고모관부군신위(顯考某官府君神位: 아버지가 무슨 벼슬을 지내신 어른 신위라는 뜻)”, 할아버지이면 현조고(顯祖考), 증조할아버지이면 현증조고(顯曾祖考)로 쓰며, 모관(某官)은 벼슬 이름을 쓰는데, 벼슬하지 아니하였으면 학생(學生)이라 쓴다.

2) 어머니일 경우

“현비모봉모씨신위(顯妣某封某氏神位: 어머니가 아버지의 벼슬에 따라 무슨 부인이며, 본관 성씨의 신위라는 뜻)”, 할머니이면 현조비(顯祖妣), 증조할머니이면 현증조비(顯曾祖妣)로 쓰며, 모봉(某封)은 남편의 벼슬 품계에 따른 정경부인(貞敬夫人)·정부인(貞夫人)·숙부인(淑夫人) 등의 봉호(封號)를 쓴다. 벼슬이 없으면 유인(孺人)이라 쓴다. 내외분을 합설(合設)하여 제사지낼 때는 고위(考位)를 서쪽, 비위(妣位)를 동쪽에 모신다.

3. 의식절차

1) 참신(參神)

신(神)께 뵙는 의식으로, 주인 이하 모두 신위를 향하여 2번 절한다. 부녀자는 4배(拜)가 항식(恒式)이다. 신주가 없어서 지방을 모실 때는 먼저 강신하고 뒤에 참선한다.

2) 강신(降神)

신을 강림하게 하는 의식이다. 주인이 앞으로 나아가 분향하고 조금 뒤로 물러나서 선다. 집사 한 사람이 주가 위의 강신 잔반(잔과 잔대)을 집어서 주인의 왼쪽에 서고, 또 한 사람이 술주전자를 잡고 오른쪽에 선다. 주인이 꿇어앉으면 잔반을 잡은 자도 꿇어앉아 잔반을 주인에게 준다. 주인이 이를 받으면, 주전자를 잡은 자도 꿇어앉아 잔에 술을 따른다. 주인은 왼손으로 잔대를 잡고 오른손으로 잔을 잡아 모사 그릇에 3번 기울여 붓는다. 몸을 굽혀 엎드렸다가 일어나서 재배하고 제자리로 돌아와 선다.

3) 진찬(進饌)

주인이 앞으로 나가면 주부(主婦)가 뒤를 따른다. 집사 한 사람은 반(盤)에 고기와 생선, 한 사람은 편과 면, 또 한 사람은 반(飯)과 갱(羹: 국)을 받들고 따른다. 주인은 고기·생선·갱을, 주부는 편·면·반을 받들어서 제자리에 올려놓는다. 진찬을 마치면 주인 이하 모두 제자리로 돌아와 선다.

4) 초헌(初獻)

처음으로 술을 드리는 의식이다. 주인이 신위 앞에 나아가 꿇어앉으면 오른쪽의 집사가 신위 앞에 놓인 잔반을 받들어 주인에게 주고 술주전자를 잡아 술을 잔에 따른다. 주인은 이것을 왼쪽 집사에게 주어 신위 앞에 엎드리게 한다. 오른쪽 집사가 다시 신위 앞의 잔반을 받들어 주인에게 주면 주인은 잔반을 받아 왼손으로 잔대를 잡고 오른손으로 잔을 잡아 모사 그릇에 3번 조금씩 기울여 따르고 잔반을 다시 집사에게 주어서 제자리에 놓게 한다.

몸을 굽혀 엎드렸다가 일어나 조금 뒤로 물러나 선다. 주인의 형제 가운데 한 사람이 육적(肉炙)을 받들어 신위 앞에 있는 시접 남쪽에 놓는다. 그리고 반개(飯蓋: 밥그릇의 뚜껑)를 열어서 남쪽에 놓은 다음 물러나 제자리에 선다. 축관(祝官)이 축판(祝板)을 들고 주인의 왼편에 섰다가 동쪽을 향해 꿇어앉으면 주인 이하 모두 무릎을 꿇는다. 축문을 읽는다.

5) 아헌(亞獻)

주부가 잔을 올리는 의식으로, 절차는 초헌과 같으나 축을 읽지 않으며 적(炙)을 진설한 다음 주부가 4배하고 자리에 물러나 선다.

6) 종헌(終獻)

주인의 자질(子姪)들이 잔을 올리는 의식으로, 절차는 아헌과 같으며 적을 진설한 다음 헌자(獻者)는 재배하고 자리에 선다.

7) 유식(侑食)

영위에게 음식을 권하는 의식으로 집사자가 잔에 첨주한 다음 젯메에 숟가락을 꽂고 젓가락을 시접 위에 올려놓되, 손잡이 부분이 서쪽으로 가게 한다.

8) 합문(闔門)

유식이 끝나면 주인 이하가 문 밖으로 나가 잠시 기다리는데 이것을 합문이라 한다.

9) 계문(啓門)

주인이 3번 기침을 하고 문을 열면 주인 이하가 다시 들어가 자리에 서고, 집사자는 국을 물리고 숭늉을 진설하고 나서 숟가락과 젓가락으로 밥을 3번 떠서 물에 만다.

10) 사신(辭神)

의식이 끝나는 절차로 주인 이하가 꿇어앉으면 집사자가 숟가락과 젓가락을 내려 시접에 얹고 밥뚜껑을 덮은 다음 일동이 재배한다. 지방을 태우고, 신주일 경우는 독개(櫝蓋)를 덮은 다음 가묘로 환봉(還奉)하는데, 주인 이하가 따른다. 그 후 집사자는 진설한 제물을 물린다.

11) 음복(飮福)

음복은 조상께서 주신 ‘복된 음식’이란 뜻으로 모든 후손이 함께 모여 먹으며, 부득이 참석하지 못한 후손이나 가까운 이웃에게 제수를 보내기도 한다.

[음식]

제례 음식은 제례에 사용되는 음식을 말하며, 제수(祭需)·제찬(祭粲)이라고도 한다. 종류에는 메·편·갱(羹)·탕(湯)·적(炙)·전(煎)·숙채(熟菜)·침채·포(脯)·혜(醯)·과일 등이 있다. 메는 밥을 뜻하며, 추석에는 송편, 설에는 떡국을 놓는다. 편은 떡, 갱은 탕국을 말한다. 탕은 고기·생선·무 등으로 요리한다. 적은 고기·생선·닭 등을 재료로 한 구이를 말한다. 전은 두부·호박·생선·고기 등을 사용한다. 숙채는 익힌 나물로, 도라지·고사리·시금치 등을 올린다. 침채는 김치를 뜻하며, 포는 북어포·육포·문어포 등을 사용한다. 혜는 식혜를 뜻하며, 과일은 대추·곶감·밤·배·사과 등을 준비한다.

[제물 진설]

1. 일반적인 진설법

제례 음식을 제상에 배열하는 것을 진설이라고 하는데, 그 방법이 지방이나 가문에 따라 다르다. 보통은 지방이 있는 쪽부터 첫째 줄에는 시접(숟가락 담는 대접)과 술잔을 놓고 메와 갱을 올린다. 둘째 줄에는 적과 전을 놓는다. 이때는 어동육서(魚東肉西)라 하여 육류는 서쪽, 생선은 동쪽에 둔다. 또 두동미서(頭東尾西)라 하여 생선의 머리를 동쪽으로 가게 한다. 셋째 줄에는 탕류를 놓는다.

넷째 줄에는 포·침채·숙채·간장·식혜 등을 올리는데, 좌포우혜(左鮑右醯)라 하여 왼쪽에 포, 오른쪽에 식혜를 놓는다. 다섯째 줄에는 과일을 놓는다. 조율이시(棗栗梨枾)에 따라 왼쪽부터 대추·밤·배·감을 놓거나, 홍동백서(紅東白西)에 따라 사과 등의 붉은 과일은 동쪽, 배 등의 흰 과일은 서쪽에 놓는다. 그리고 약과와 강정 등을 함께 놓는다.

그밖에 김치는 동쪽, 나물은 서쪽에 두는 생동숙서(生東熟西), 포는 왼쪽, 젓갈은 오른쪽에 놓는 건좌습우(乾左濕右), 남자는 왼쪽, 여자는 오른쪽에 서는 남좌여우(男左女右) 등의 방법을 따른다. 제례 음식을 마련할 때 주의할 점은 고춧가루와 마늘을 쓰지 않으며, 화려한 색깔의 음식을 피한다. 음식의 수는 홀수로 한다. 과일 가운데 복숭아는 귀신을 쫓는다 하여 상에 올리지 않는다.

2. 논산 지역 진설법

제물 진설법은 집안마다 전통을 잘 보여주나 이러한 진설법에 대해서 일반론을 펴기는 어렵다. 논산과 공주 지역 일원의 안동김씨 일가에서는 전통적으로 우포좌혜(右脯左醯)의 방식을 따른다. 이는 선원(仙源) 김상용의 집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그 연유는 전해지는 바가 없다. 또한, 현재 서울 인근의 청음 김상헌 후손은 과일 진설에서 홍동백서의 방식을 따르나 논산과 공주 지역 일원의 후손들은 대체로 조율이시의 방식을 따르고 있어서 같은 가계에서도 통일된 방식은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청음 김상헌의 경우 나라를 잃은 죄를 지은 신하라 하여 기제에 축을 읽지 않고 술도 한잔만을 올리라고 유언을 남겼다고 하여 지금까지도 지켜지고 있다. 또한, 부모의 병환에 올릴 약재를 태웠다고 하여 부인을 용서하지 않고 묘역도 따로 정하도록 하고, 기제에서도 합설하지 못하게 하였다.

예학의 태두로 평가받는 사계 김장생의 가문에서는 목판본 진설도가 전해지고 있다. 그 가운데 사계 김장생의 측실이었던 순천김씨의 진설도에는 주목할 만한 부분이 실려 있다. 이에 따르면, 가장 바깥 열 좌측에는 전율(前栗), 우측에는 증조(蒸棗)를 진설하고 있다.

그리고 목판 진설도 후면에 “대추와 밤을 삶고 지지며, 물고기와 육고기를 기름에 지지는 것은 비록 고례(古禮)에 어긋나나, 우리나라 풍속에 따라 쓴 지 이미 오래되었으므로, 부득이 풍속을 쫓는다.”라고 하였다. 이 진설도는 1851년 후손 김덕이 쓴 것이다. 이에 비추어 볼 때, 논산 지역 일원에서는 1850년경까지 찐 대추와 삶은 밤을 제수로 올렸음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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